작고 시인의 시

김동수_신석정과 어머니 기억(발췌)/ 어머니 기억 : 신석정

검지 정숙자 2022. 9. 30. 01:50

    어머니 기억

       어느 소년少年의   

 

    신석정(1907~1974, 67세)

 

 

  비오는 언덕길에 서서 그때 어머니를 부르던 나는 소년이었다. 그 언덕길에서는 멀리 바다가 바라다 보였다. 빗발 속에 검푸른 바다는 무서운 바다였다.

 

  "어머니"하고 부르는 소리는 이내 메아리로 되돌아와 내 귓전에서 파도처럼 부서졌다. 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고 내 지친 목소리는 해풍 속에 묻혀 갔다.

 

  층층나무 이파리에는 어린 청개구리가 비를 피하고 앉아서 이따금씩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청개구리처럼 갑자기 외로웠었다.

 

  쏴아~ 먼 바람소리가 밀려오고 비는 자꾸만 내리고 있었다. 언덕길을 내려오노라면 짙푸른 동백잎 사이로 바다가 흔들리고  우루루루 먼 천둥이 울었다.

 

  자욱하니 흐린 눈망울에 산수유꽃이 들어왔다. 산수유꽃 봉오리에서 노오란 꽃가루가 묻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본 나는 그예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말았다.

 

  보리가 무두룩이 올라오는 언덕길에 비는 멎지 않았다. 문득 청맥죽을 훌훌 마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것은 금산리란 마을에서 가파른 보릿고갤 넘던 내 소년시절의 일이었다.

    -전문-

 

 

  신석정辛夕汀과 어머니 기억_동양적 낭만의 반속적 자연주의(발췌) _김동수/ 시인, 문학평론가

  본명은 석정(錫正:1907-1974),  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서 출생하여 일곱 살이 되던 1914년 선은리에 정착했다. 보통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박한영 선사로부터 약 1년간 불전佛典을 수학, 1924년 ⟪조선일보⟫에 시「기우는 해」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1년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등과 『시문학』 동인(3회부터)으로 활동하면서 노장老壯철학과 타고르의 영향으로 전원적, 목가적 시풍을 발표하면서 서정시의 독보적 위치를 확보함.

  해방 후에는 향리에서 시작 활동과 더불어 전주고, 전주상고에서 교편을, 전주대, 전북대에 출강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의 시는 간절한 어조와 부드러운 언어로 암담한 시대상황에 대한 강한 거부로서 초월적이고도 본원적인 이상 세계에 대한 열망을 노래하여 김기림으로부터 '반세속적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해 시를 썼다.'는 평을 받았다.

 

       *

 

  어머니에 대한 기억, 그것도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애틋하다. 시인도 이 시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不在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그것은 '천둥이 울고 바다가 흔들릴 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청개구리의 눈망울'에 어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한 단면이 아니었을까 한다. (p. 시 226-227/ 론 222-223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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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정문학』 2022년 제35호 / <평설> 에서

  *  김동수/ 1981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말하는 나무』『그림자 산책』등, 평론집『일제 침략기 민족시가 연구』『한국 현대시의 생성미학』『시적발상과 창작』등, 백제 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