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호수(湖水)/ 오장환

검지 정숙자 2022. 9. 26. 18:34

 

    호수湖水 

 

    오장환(1918-1951, 34세)

 

 

  호수에는 사색四色 가지의 물고기들이 살기도 한다.

  차디찬 슬픔이 생겨나오는 말간 새암

  푸른 사슴이 적시고 간 입자족이 남기어 있다.

  멀리 산간에서는 시냇물들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어오고

  어둑한 숲길은 고대의 창연한 그늘이 잠겨 있어

  나어린 구름들이  한나절 호수가에 노닐다 간다.

  저물기 쉬운 하룻날은

  풀뿌리와 징게미의 물내음새를 풍기우며 거무른 황혼 속에 잠기어버리고

  내 마음, 좁은 영토 안에

  나는 어스름 거무러지는 추억을 더듬어보노라.

  오호 저녁바람은 가슴에 차다.

  어두운 장벽臟壁 속에는 지저분하게 그어논 소년기의 낙서가  있고,

  큐비트의 화살 맞었던 검은 심장은 찢어진 대로 겉날리었다.

  가는 비와 오는 바람에

  흐르는 구름들이여!

  너는 어느 곳에 어젯날을 만나보리오.

  야윈 그림자를 연못에 적시며 낡은 눈물을 어제와 같이 흘려보기에

  너는 하많은 청춘의 날을 가랑잎처럼 날려보내었나니

  오

  나는 싸느랗게 언 체온기를 겨드랑 속에 지니었도다.

    -전문(p.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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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사』 2022-여름(110)호 <권말 부록/ 황무지 오장환 시선> 에서

  * 오장환/ 1918년 충북 보은 출생, 1933년 『조선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1936년『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 시집『성벽』 『헌사』『나 사는 곳』『병든 서울』등, 역시집『에쎄닌 시집』, 1948년 월북 추정, 1951년 지병인 신장병으로 사망, 1988년『오장환 전집』1,2권이 서울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