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포엠피플』2022. 여름(창간호)/ 창간사 : 고광식

검지 정숙자 2022. 8. 9. 01:20

<포엠피플2022-여름(창간호) / 창간사>

 

    시뮬라크르, 시詩뮬라크르

 

    고광식/ 발행인 겸 편집인

 

 

  플라톤에게 있어서 시뮬라크르는 의미 없고 부정적인 개념이다. 이데아에 있는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고유의 사물을 모방한 가짜 복사물이기 때문이다. 복사물인 시뮬라크르는 원형인 사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플라톤은 원형을 모방하면 할수록 원형과 멀어지므로 시뮬라크르를 부정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시뮬라크르의 개념은 들뢰즈에 의해 새롭게 바뀐다. 들뢰즈는 이데아와 시뮬라크르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라는 객관적 사물에 대한 부정이다. 이러한 부정은 장 보드리야르에 의해 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가 주장한 것은 원본의 상실이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시뮬라크르는 원본 없이 존재하는 개념으로 바뀐다. 허상을 소비하고 이미지를 종교화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시뮬라크르에 지배받는 존재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넘쳐나는 상품을 보면 현대인들이 시뮬라크르에 지배받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시인에게 있어서 시詩뮬라크르는 원본을 생산하는 숭고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시적 시뮬라크르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존재이다. 시인이 체험하고 감각한 정신적 에피파니가 시이다. 자본주의가 이데올로기화하고 있는 물질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신이 쌓아놓은 물질 위에 앉아 행복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선언한 사람은 아직 없다. 물질은 행복이고 영원함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이루어놓은 물질 위에서 정신적 불안감을 느낀다. 자본주의라는 어두운 동굴 밖을 나와 본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인 헤테로토피아에 이르러 행복해한다. 그러므로 시는 절대적 순수 근원으로 개별 정신의 원형이 된다. 우리가 시와 평론 전문지를 창간하는 것은 시적 시뮬라크르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실현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시적 현실에 끌어들이는 지순한 과정이다. 시詩뮬라크르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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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평론 전문지인 ⟪PoemPeople⟫ 창간은 시의 세계에 독립적인 시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시의 나라에는 시를 쓰는 시민詩民만 존재한다. 시민인 시인들은 신이 죽은 자리에서 일어나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꾼다. 또한 이성이 만든 자본이 주의가 된 시대에 저항한다. 물화 되지 않으려는 숭고한 저항이 시인의 정신이다. 자본주의가 준동할 때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와 랭보가 저항의 정신으로 시적 헤테로토피아에 도달했다. 시인은 일상에선 시에 철학을 담아 삶을 성찰하고, 불의 앞에선 타협 없이 저항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꽃'에 '악'을 붙인 보들레르는 사회적이었고, 파리 코뮌에 열광했던 랭보는 정치적인 동시에 혁명적이었다. 그러므로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실패한 정치적 혁명을 문학적으로 구현했다는 증거가 된다. 문예지를 창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는 『창조』이다. 창조는 종합 문예 동인지로 통권 9호를 발간하고 종간되었다. 조태일 시인이 1969년 창간한 월간지 『시인』은 1년 만인 1970년에 정부 당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폐간했다.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김지하, 양성우, 김준태 등 한국  문학사에 남을 시인들을 등단시켰다. 문예지 창간이 얻은 웅혼한  결과이다.

  근래 폐간된 유수 문예지만 해도 『세계의 문학』, 『문예중앙』, 『작가세계』 등이 있다. 세간에선 이들 문예지의 폐간을 경제적인 문제로 접근하지만, 이 또한 인문학적 가치로 접근하면 석연치 않은 의문점이 든다. 현재 발간되고 있는 문예지 수는 약 300여 종에 이른다. 이들 문예지 대부분은 힘들게 운영되고 있다. 현재도 경제적인 문제로 폐간하는 문예지가 속출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경제적 기반도 탄탄하지 않은데 문예지를 창간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와 평론 전문지인 ⟪PoemPeople⟫ 을 창간한다. 문학은 경제적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인문학의 최전선에 있는 정신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는 존재이다.

  우리는 ⟪PoemPeople⟫로 진짜 시인을 찾아 한국 문단의 망망대해를 항해할 것이다. 한국문단은 등단한 곳이 어디냐에 따라 신분이 정해진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와 권위 있는 문예지로 등단한 사람들은 문단의 적자로 평생 그 프리미엄을 가지고 문단 활동을 한다. 등단 후에 졸작을 연달아 발표해도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단지가 약한 서얼 문인에 해당하면 아무리 좋은 작품을  발표해도 문단에서 평가받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적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는 문예지로부터 청탁받아 평론을 쓴다. 특집으로 정해진 작가의 작품론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론가가 청탁받지 않은 글을 쓸 때는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해야 하므로 최고 등단지 출신 작가를 선택한다. 이렇듯 문단은 견고한 구조로 작동한다. 문단의 구조는 어느 한 사람이 깨뜨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때로 쇄빙선이 되어 단단하게 얼어있는 카르텔이라는 빙하를 깨며 전진할 각오가 돼 있다. ⟪PoemPeople⟫ 앞에서 시인들의 이력은 분해될 것이고, 오직 작품만이 홀로남아 조립되어 평가받을 것이다.

  ⟪PoemPeople⟫은 좋은 작품을 쓰는데도 평가받지 못하는 시인들에게 주목한다. 지금 여기 날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이 발표된다. 누군가는 전통적 서정시의 문법으로 시를 쓰고 누군가는 새로운 서정시의 문법으로 시를 쓴다. 이렇게 쓰여 발표되는 시들은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다. 날마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 일들이 역사가 되기 위해선 역사가가 선택해야 한다. 역사가가 기록하여 공감을 얻었을 때 수많은 일들 중 하나는 역사가 된다.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이 발표되는 시가 문학사에 남거나 문단의 주목을 받으려면 평론가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평론가가 작품의 수월성을 입증하여 문단의 공감을 얻을 때 바닷가의 모래알 같았던 작품 하나는 문학사가 된다. ⟪PoemPeople⟫은 수많은 작품 중에서 오직 작품만 가지고 평론가가 선택하게 할 것이다. 더 이상 구조화되어 있는 문단의 헤게모니에 굽히지 않는다는 걸 밝힌다. 이곳으로 조선시대 허균와 일제감점기 이육사의 저항 정신을 소환할 작정이다.

  ⟪PoemPeople⟫은 시인들의 패자부활전이 이루어지는 문예지를 꿈꾼다. 우리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신인상 공모에 응모자의 재등단을 허용하고, 나이를 밝히라고 하지 않겠다. 신문사나 문예지들이 신춘문예나 신인상 공모를 하면서 재등단을 막고 나이를 밝히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등단 장사꾼의 말에 현혹되어 잘못 등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하고, 기대 수명 100세 시대에 나이 들어 꾸는 꿈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잘못 등단하여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한탄하는 수많은 시인을 보았다. 그리고 문학 만학도가 등단 준비를 하면서 나이를 밝히라는 공모 규정에 절망하는 것도 보았다. 롤스의 정의의 원칙인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 우리 문단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지금 여기의 우리  문단은 정의의 원칙을 통하여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으로 평가받는 문단은 시인의 오래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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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시詩뮬라크르는 원초적 자유를 추구한다. 허상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소비한다. 시인은 사유 결정권의 자유 속에서 삶에 대해 탐구한다. 시적 발화로 우리의 근원을 묻고 우리가 가야 할 실제화된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를 탐색한다. 칼 융이 자기를 찾는 것이 삶의 목표라 했듯이 시인은 시적 시뮬라크르를 만들어 자기의 본성을 찾아간다. 집단 내면화 상태로 자본이 주의가 되어 있는 물화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시인이 만들어낸 시뮬라크르는 시인을 지배하고 인류가 가야 할 곳을 밝히는 실제적 유토피아가 된다. 물화의 세계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 불가능하다. 오직 시적 작업을 통해 우리는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물화의 세계에서 자기실현을 하기 위해선 물질 안쪽의 정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현재의 제도와 문화의 허위를 벗겨내고 자기 내면과 대면해야 한다. 이렇게 물질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 속의  순수 자아와 마주할 필요가있다. 

  원초적 자유로서 시뮬라크르는 내면의 감정 욕구를 읽어야 가능해진다. 현재 존재하는 현실의 가역성을 실험하고 재현해 의미를 만들어내든지 아니면 모든 의미를 지워가며 언어가 원초적 의미를 만들게 하든지를 선택하면 된다. 물화 세계는 우리의 자아를 억압하고 있다. 물질적 세계 안의 자아는 참된 자기와 불화한다. ⟪PoemPeople⟫은 시 쓰기의 개별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갈 것이다. 시적 시뮬라크르가 반복해서 나타나면 고유의 시 세계가 만들어진다. 자기의 시 세계가 진짜 자기의 모습이다. 이러한 시적 시뮬라크르의 여행은 시인에게서 출발하지만 결국 인류가 꿈꾸는 궁극의 물결이 될 것이다. 시적 자기실현은 한평생을 거쳐 계속되어야 한다. 시인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시를 쓰고 부끄러움이 없는 세계를 꿈꾼다. 시적 자아는 시를 쓰면서 인류의 물화를 성찰하고 무한한 이타적 가능성을 열어간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개별화 과정은 시인의 운명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詩뮬라크르는 참된 세계를 상징하는 원본이다. 시인은 시詩뮬라크르를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물성과 감성을 시詩뮬라시옹한다.

  우리가 ⟪PoemPeople⟫에 탑승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은 현실을 딛고 미래를 여는 행위이다. 원해서 태어난 세상은 아니지만, 우리는 원하는 세계로 간다. 자본의 세계를 탈색해서 정신의 세계로 만들 것이다. 시인은 물화 세계에 대해 숭고한 저항을 하는 존재이다. 신념의 항해는 집단적이지만 개별적이다. 우리는 시 쓰기의 문법을 고정하지 않고 개인이 지닌 특수성을 인정할 때 자기실현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안다. 고전주의의 질서와 규범을 딛고 있되 낭만주의의 공상과 혁명도 존중한다. 더 나아가 모든 의미를 지우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원초적 언어를 추구한다고 해도 개별화라는 의미에서 인정한다. 다양한 변화와 실험을 통하여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여행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시詩뮬라시옹하다가 쓰러지면 누군가는 다시 우리가 쓰러진 자리에서 시詩뮬라시옹을 시작할 것이다. ⟪PoemPeople⟫의 엔진은 우리의 뜨거운 심장이다. (p.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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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emPeople시인들』 2022-여름(창간)호 <창간사> 에서

   * 고광식/ 1990년 『민족과문학』 시 부문 신인상 & 2014년 ⟪서울신문⟫ 문학평론으로 등단, 시집『외계 행성 사과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