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中
창조의 문과 AI 시인의 출현(발췌)
권성훈/ 시인, 평론가
얼마 전 어느 시인이 한 편의 시를 보내왔다. 「슬픈 리듬의 뇌간」이라는 시였다. 상당히 감각적이고 시청각적인 이미지가 시 전편에 포착되었다. 여기에 '감정'이 주입된 '리듬'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요동친다'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시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썼다고 했다.
인공지능은 21세기를 지배하는 첨단 키워드라는 정도로 알고 있을 뿐. AI를 이용해서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므로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면 시는 '고도화 된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는 절대적인 인식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보편적 가치이며 마치 문학의 생명과도 같은 전언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매개로 시와 평론을 쓰고 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해 왔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인공지능이 창작한 시는 시인의 정서와 체험이 상상력과 결합되어 만들어진다는 시창작에 대한 보편적인 상식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인공지능 시가 창작되기까지 과정을 영상 미디어학과 교수인 「슬픈 리듬의 뇌간」의 시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생각보다 인공지능 시 창작이 간편했다. 시인이 인공지능 프로그램 '뮤즈'를 사용하여 여러 개의 시어를 입력하고 영어로 번역하기를 돌려가면서 시가 자신의 스타일로 완성될 때까지 클릭을 하면 된다고 했다. 여기서 첫 행에서 영감을 받은 뮤즈는 뮤즈들마다 시구절을 제안하는데 행간의 선택과 저장을 이어가면서 끝내기를 통해 한 편의 시가 탄생되는 것이다. 물론 최종 결정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AI의 도움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클릭의 선택과 클릭의 집중이 반복되는 과정속에서 창작된 인공지능의 시는 시인의 시인가? AI의 시인가? 좋게 말해서 이 둘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AI 시인이 21세기 문학을 창출할 수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이 문화적인 충격 앞에서 시인들을 생각한다. 인공지능 시대 앞에서 모르기는 해도 이것을 이용해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은 또 얼마나 될까?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이제는 인간이 만든 '창조의 문'에서 또 AI라는 새로운 개체의 창작자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거부하기보다 어쩌면 시대 정신의 산물로서 종국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명화 시대는 새로운 문을 통해 열리고 그것은 시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p.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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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문학』 2022-여름(144)호 <권두언>에서
* 권성훈/ 시인, 평론가,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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