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1941-2022, 81세)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전문-
◈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저항시로 독재정권에 맞서고 자유를 갈망하던 김지하 시인이 지난 5월 8일 타계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 중동고,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詩人』 에 「황톳길」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0년대 유신 독재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을 담은 참여시를 발표했으며 여러 차례 옥고도 치렀다. 1980년대 이후 동서양의 철학과 한국의 전통사상을 아우르는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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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6월(3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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