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읽은 나의 시

강영환_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추천/ 신의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2. 2. 24. 01:54

 

    신의

 

    정숙자

 

 

  바닷물의 밑동은 구름일 거야. 바위일 거야. 폭포일 거야. 빗물일 거야. 우물일 거야. 빗발일 거야. 이슬일 거야. 눈물일 거야.

 

  그 줄기들 어찌어찌 흘러 개울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물이 되고. 맺히고 풀리다가 운명적으로 뒹굴다 꺾이다 여위다 결국.

 

  바다가 된 이상. 바닷물이 된 이상. 이상과 이상. 이성과 이성. 이제는 놓아 보내자, 오래 가둔 슬픔도 하늘 멀리 밀어 보내자.

 

  일사불란 푸른 물보라. 대나무숲 바람을 깨워, 조선소나무 밭 서릿발도 단단히 끼워 철썩~ 철썩~ 순식간에 허공에 지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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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썩지 말라’, ‘썩지 말라

  산소 한 모금 남겨 주고자

  파도는 오늘도 저리   산화

    -전문, 『시에』 2021-여름호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전문: 이 계절에 발표된 숱한 시들을 읽으며 느낀 점은 대부분 시들이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영화도 시작해서 5분 이내로 관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흥행에 실패한다지 않는가. 시도 그렇다 시작 후 서너 행 이전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 시는 실패작으로 분류된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시적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가 잡중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를 읽는데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시들이 긴장감이 없어 정신을 집중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긴장감이 왜 없을까를 곰곰 생각해보았다. 첫째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못하거나 둘째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선명하지 못하거나 셋째 개인적 사변에 빠져 인류 공통의 문제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넷째 개인적 체험이나 지식의 나열로 독자들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경우 등이다.

  좋은 시는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시다. 위 작품이 그렇다. 몇 번을 읽어도 늘 새로움을 준다. 내용은 바다를 이룬 물에 대한 사색으로 이뤄져 있고 바닷물에 대한 새로운 아젠다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신선하다. 아니 이미 있었던 기존의 아젠다를 새로 재해석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기에 독자는 한눈을 팔 수가 없다. 1연은 바닷물을 이루는 원소를 호출하였고 2연은 그것들이 바다로 모여드는 모습, 3연은 바닷물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싶은 화자의 이상을 4연은 바닷물이 속내에 간직한 한마디 구성요소와 풀어내는 방법을 마지막 연은 화자의 바램과 생각을 슬쩍 비춰보인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이 작품의 맛은 달아나 버린다. 바닷물이 간직하고 있는 외형적 모습과 내면적 사유를 적절한 진술로 이끌어내 끝까지 갈등 구조를 이어가면서 독자들을 긴장시킨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성공작이라고 할 만하다.

  같은 책에서 박송이 시인의 「메롱나무」도 눈여겨 볼 만한 작품이었다. (p. 시 240/ 론 241) (추천/ 강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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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소금』 2021-가을(39)호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