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읽은 나의 시

편지_ 오픈 레터의 우정을 간직하며/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1. 1. 12. 02:46

 <편지>

 

    오픈 레터의 우정을 간직하며

    -류미야 시인께

 

     정숙자

 

 

  어느 날 제가 어느 시인으로부터 이렇게나 따뜻한 공개편지를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의 확장 속에서도 그려보지 못한 일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내내 수평선 저 너머로, 아니 지평선 저 밖으로 밀려갔던 시간들이 깊이깊이 가라앉은 저의 의식을 흔들며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발표하고, 또 책으로 묶어 묶어내기도 했던 혈흔들이 파도가 쓰러질 때마다 함께 쓰러지고, 일어설 때마다 다시 일어서며 철썩철썩 시야를 적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어쩌면 난자卵子일 때부터 읽고 있었을지 모르는 제 몫의 하늘과 그늘의 중량을 새삼스레 헤아려보게 됐던 셈이지요. 이런 헤아림은 계획성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파동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동력은 곧바로 우의가 부여한 온정일 것입니다.

  제가 류미야 시인께 시선이 닿은 첫 번째 원인은 뜨끔뜨끔 지면에서 만나는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시조時調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현대적 감각과 표현들이 무척이나 반갑고,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시조에서 현대적 감각과 표현이란 시대의 흐름이자 요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익히 보아오던 어휘군과 감성/정서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느낌을 받고 있던 차에 류미야 시인의 시조-시는 발견의 즐거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술의 궁극이 새로움이라는 걸 고려할 때 그건 굉장한 광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안에선 맞아! 맞아! 시조도 이제 이 정도의 탈주선을 노櫓 저어야 돼라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시조 분야를 혼자 점치며, 장차의 류미야 시인의 문학세계를 멀리- 널리- 바라다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종이무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푹 찔릴 수밖에 없지 않았겠어요? 첫 연이 이렇습니다. 부주의한 손놀림이 끝내 피를 불렀다” 그리고 5연에 이르면,

 

   칼을 벼린 일도양단은 날카로워 위험하고

   칼을 버린 언어도단은 날것이라 위태하다

 

  이 예리한 언어의 감각은 각고의 노력이 아니면 습득할 수 없는 인식이자 테크닉(technique)일 테지요. “일도양단언어도단이라는 애너그램(anagram) 혹은 펀(pun)으로도 읽힐 수 있는 여유에 저는 기꺼이 허를 찔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 줄의 독창성獨創性을 위하여 종이라는 사물을 두고 무사와 한판 벌이는, 일합一合의 현장이 역력합니다. ! 그것보다 진한 잉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보다 화려한 각축이 어디에 고이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은 벼루이며, 우리의 마음은 먹이며, 우리의 의지란 두세 뼘 길이의 붓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고통과 악몽도 묵묵히 견디고, 견딜 뿐만 아니라 징검돌 삼아 시퍼런 삶을 건너는 존재가 아닐까요. 아차, 제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글이 회답이라는 걸 잊고 말이죠(ㅎㅎ).

  급-선회하겠습니다. 류미야 시인께서 제게 주신 오늘의 오픈 레터(open letter)는 또 다른, 많은 분들한테도 깊은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 절벽 위의 문인목文人木은 서 있기 마련이고, 각인된 몇 마디의 햇살은 오랜 세월 맺힌 이슬을 빛내 줄 테니까요. 이제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입니다. 올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과 웹진 월간 공정한시인의사회에도 큰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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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 · 서울⟫ 소식지 제231호 2021년 1월 문학인이 띄우는 편지 18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