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남은 나의 시

김용직/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9. 1. 1. 03:36

 

<인물시>

 

    김용직

      -아와로키테슈와라

 

     정숙자

 

 

  옷깃을 여미고 이 편지를 씁니다. 1994년 1월. 단시집 『감성채집기』해설을 써 주십사고 찾아 뵈었을 때 선생님께선 "원고를 본 후 결정하겠다." 단호하셨지요. 「대본」("개구리 꽈리 부는 모내기철엔/ 농부들 연등처럼 못줄에 피네")이라는 그 한 편이 있어, 결국 쓰시겠다 했지만 대부분의 시를 "고쳐라" 못 박으셨지요. 오로지 전통주의자였던 제게 현대시는 너무도 딱딱했습니다. 도무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왜 시를 그토록 비틀어야 하는지 까닭도 모른 채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괴기법怪技法의 정체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론서들을 읽으며 선생님의 강의를 청강하러 다닐 때, 마흔세 살이나 후린 제가 학부 학생들 틈에 군학일계君鶴一鷄로 끼었을 때, 청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매번 앞줄에 앉아 눈을 껌뻑거릴 때…… 저는 두 세상을 살았습니다. "전면개고. 한 줄 더. good. 확충. 교체. 좀 더 크게. 3행 정도 더. 2행으로. 2행 추가" 등등 혹독하신 체크에 피가 말랐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very good. excellent!도 주셨기에 힘을 추스르곤 했지요. 제 문투가 한 껍질을 벗기까지는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천수천안관세음이란 어디 계시는 누구일까요! 스승님은 몇 번째 팔이며 몇 번째의 형안일까요! 아니 스승님이 곧 아와로키테슈와라(Avalokitesvara)는 아닐까요! 또 한 번 1월이 왔고, 새로운 봄이 새벽길을 날아오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보다 나은 시 한 편을 짓는 날까지 촛불을 끄지 않겠습니다. 지난 날 하나하나 틔워주신 눈금들이 시시각각 저를 다잡아 줄 것입니다.

    -전문,『문학나무』2008-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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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노트/ 김용직을 정숙자가 쓰다

  아와로키테슈와라(Avalokitesvara_산스크리트 이름)는 티베트 자비의 붓다이다. "우주 곳곳에서 중생을 보살피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소걀 린포체, 『티베트의 지혜』)고 한다. "아미타불의 화신이자 서방정토에 거주하며 모든 곳을 자애롭게 굽어보는 보살"(톰 로웬스타인, 『붓다의 깨달음』)이다. 스승이 내게 글눈 한 알을 베푸셨으니 어찌 관음을 보았다 말하지 않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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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시집을 내면서|

  시인과 화가가 함께 그린 초상화

 

 

  시인도 초상화를 그릴 수 있을까? 전기를 쓸 수 있을까? 기획의 출발점은 이것이었다.

문학이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구일진대 시로써 인간을 제대로 그릴 수 있다면 그 시는 언어로 그린 초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인물 창조에 나선 시인들이 있다. 전시대에는 '전형적 인물의 창조'가 소설가의 특권이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시인도 얼마든지 실존인물을 형상화할 수 있다.

전기작가가 책 한 권을 통해 어느 인물의 생애를 쓸 때 시인은 그 인물의 단면을 한 편의 시로 스케치한다. 그 인물의 특징을 한 편의 시로 요약, 정리한다.

  우리는 28명의 시인(소설가 1명)에게 인물 소재 시를 청탁하여 52편의 시를 받았다. 시인들에 의해 그려진 초상화는 한용운과 서정주, 박목월 등 선배 문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최불암 · 손예진 같은 연예인, 장사익 · 조수미 · 김광석 같은 가수도 있었다. 시인의 평범한 주변 인물도 있었고 머플러가 차 뒷바퀴에 빨려 들어가 목뼈가 부러져 죽은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모딜리아니가 폐결핵으로 죽자 임신한 몸으로 그 다음날 건물 1층에서 투신자살한 그의 아내 잔느 에뷔테른, 처형 직전 두건 씌우기를 거부하며 눈을 뜬 채 의연히 죽은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도 있었다. 인물시집의 대상이 된 이는 예수에서부터 황진이까지라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다양한 인물인가.

  시만 있는 것보다는 시와 그림의 조화가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편집회의 결과 우리는 이인 화가에게 이 모든 이들의 초상화(캐리커처)를 그려줄 것을 부탁했다. 화가는 몇 달에 걸쳐 혼신의 열정으로 각 인물의 특징을 잡아 한 컷 한 컷 그려나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하게 된 이 '인물시집'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문학나무사'는 시인들이 인간 연구를 할 수 있는 큰 마당에 이제 한 장의 자리를 깔았을 뿐이다. 앞으로 『젊은시』『젊은소설』과 더불어 매년 1권씩 발간될 인물시집에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를 기대한다. 인물시는 시인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문학이다.

    2008년 겨울

  『문학나무』편집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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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시/ 그리고 시가 시인에게로 갔다 ①『사랑했을 뿐이다』강인한 외이인 그림/ 2009.1.5. <문학나무> 펴냄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등 

 * 이인/ 화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13회(가람화랑, 샘터화랑, 미술회관, 금호미술관 등), hommage100(코리아나아트센터), 그림, 문학을 그리다(북촌미술관), 역사와 의식-독도 진경전(서울 옥션스페이스), 남한강-자연과 역사(학고재화랑), 시카고 아트페어(미국 네이브피어),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부문 심사(2003), 국립현대미술관 · 경기도미술과 · 외교통상부 · 제주현대미술관 등 다수 작품 소장, 산문집『색색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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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시 집필 시인

  고정희_강인한/ 고현정_구회남/ 경허선사_홍사성/ 권정생_박남희/ 김광석_한우진/ 김규동_강인한/ 김남조_정일근/ 김동리_손진은/ 김용직_정숙자/ 김유신_고운기/ 김해석_김종섭/ 박건호_구회남/ 박목월_신달자/ 박목월_김성춘/ 박수근_반칠환/ 배 호_정일근/ 사담 후세인_이승하/ 서정주_손진은/ 서정주_정숙자/ 손예진_박남희/ 스칼렛 오하라_이경림/ 신사임당_이근화/ 예수 그리스도_이승하/ 오규원_김성춘/ 오현스님_홍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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