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남은 나의 시

서정주/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9. 1. 1. 02:48

 

<인물시>

 

    서정주

      -어디 뭐라고

 

     정숙자

 

 

  선생님, 저는 어제 단시를 하나 지었어요

  그래 뭐라고 썼지?

  제목이 숙명인데요 이슬에 관한 내용이에요

  외울 수 있으면 외워 봐

  나무들 손끝으로 받는 이슬을 풀잎은 몸 굽혀 허리로 받네, 예요

  어디 뭐라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외워 봐

  나무들~ 손끝으로 받는 이슬을~ 풀잎은 몸 굽혀 허리로 받네~

 

  그는 창밖으로 담배연기를 길게 풀어 보냈다 그리고는

 

  "나는 육십 년 동안 시를 썼어도 이슬 한 방울의 무게를 달아볼 생각은 못했어. 시는 누가 쓰든지 잘 쓰는 게 문제지 꼭 내가 써야만 되는 건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그 한마디는 내 문학인생에 주춧돌이 되었다

  그날, 따라주신 맥주와 부라보! 웃음소리도

  바위틈 난초로 뿌리내렸다

    -전문,『문학나무』2008-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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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노트/ 서정주를 정숙자가 쓰다

  인물시의 본령이란 시적 대상자의 격과 품을 적실하게 그려내는 일일 것이다. 이 시에서 거기 맞게끔 중점을 둔 부분이 곧 3연이다. "나는 이슬 한 방울의 무게를 달아볼  생각은 못했어."라는 구절의 솔직과 겸손은, 한 획의 어긋남도 없는 사실 그대로이다. 그리고 "시는 누가 쓰든지 잘 쓰는 게 문제지 꼭 내가 써야만 되는 건 아니야."라는 말씀 역시 아무나 건넬 수 없는 대시인의 너그러움과 진리이기에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해온 좌표다. 미당(고이 잠드소서!)은 나를 등단시켰을 뿐 아니라 미래를 축복해주신 분이다. 그 온정을 어찌 다 펴 보일 수 있으리오. 이 시의 배경일자가 1990년 8월 18일이니 올해로 열여덟 해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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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시집을 내면서|

  시인과 화가가 함께 그린 초상화

 

   시인도 초상화를 그릴 수 있을까? 전기를 쓸 수 있을까? 기획의 출발점은 이것이었다.

 문학이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구일진대 시로써 인간을 제대로 그릴 수 있다면 그 시는 언어로 그린 초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인물 창조에 나선 시인들이 있다. 전시대에는 '전형적 인물의 창조'가 소설가의 특권이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시인도 얼마든지 실존인물을 형상화할 수 있다.

  전기작가가 책 한 권을 통해 어느 인물의 생애를 쓸 때 시인은 그 인물의 단면을 한 편의 시로 스케치한다. 그 인물의 특징을 한 편의 시로 요약, 정리한다.

  우리는 28명의 시인(소설가 1명)에게 인물 소재 시를 청탁하여 52편의 시를 받았다. 시인들에 의해 그려진 초상화는 한용운과 서정주, 박목월 등 선배 문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최불암 · 손예진 같은 연예인, 장사익 · 조수미 · 김광석 같은 가수도 있었다. 시인의 평범한 주변 인물도 있었고 머플러가 차 뒷바퀴에 빨려 들어가 목뼈가 부러져 죽은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모딜리아니가 폐결핵으로 죽자 임신한 몸으로 그 다음날 건물 1층에서 투신자살한 그의 아내 잔느 에뷔테른, 처형 직전 두건 씌우기를 거부하며 눈을 뜬 채 의연히 죽은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도 있었다. 인물시집의 대상이 된 이는 예수에서부터 황진이까지라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다양한 인물인가.

  시만 있는 것보다는 시와 그림의 조화가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편집회의 결과 우리는 이인 화가에게 이 모든 이들의 초상화(캐리커처)를 그려줄 것을 부탁했다. 화가는 몇 달에 걸쳐 혼신의 열정으로 각 인물의 특징을 잡아 한 컷 한 컷 그려나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하게 된 이 '인물시집'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문학나무사'는 시인들이 인간 연구를 할 수 있는 큰 마당에 이제 한 장의 자리를 깔았을 뿐이다. 앞으로 『젊은시』『젊은소설』과 더불어 매년 1권씩 발간될 인물시집에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를 기대한다. 인물시는 시인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문학이다.

 

  2008년 겨울

 『문학나무』편집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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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시/ 그리고 시가 시인에게로 갔다 1『사랑했을 뿐이다』강인한 외이인 그림/ 2009.1.5. <문학나무> 펴냄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등

 * 이 인/ 화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13회(가람화랑, 샘터화랑, 미술회관, 금호미술관 등), hommage100(코리아나아트센터), 그림, 문학을 그리다(북촌미술관), 역사와 의식-독도 진경전(서울 옥션스페이스), 남한강-자연과 역사(학고재화랑), 시카고 아트페어(미국 네이브피어),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부문 심사(2003), 국립현대미술관 · 경기도미술과 · 외교통상부 · 제주현대미술관 등 다수 작품 소장, 산문집『색색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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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시 제1 집 집필 시인

  고정희_강인한/ 고현정_구회남/ 경허선사_홍사성/ 권정생_박남희/ 김광석_한우진/ 김규동_강인한/ 김남조_정일근/ 김동리_손진은/ 김용직_정숙자/ 김유신_고운기/ 김해석_김종섭/ 박건호_구회남/ 박목월_신달자/ 박목월_김성춘/ 박수근_반칠환/ 배 호_정일근/ 사담 후세인_이승하/ 서정주_손진은/ 서정주_정숙자/ 손예진_박남희/ 스칼렛 오하라_이경림/ 신사임당_이근화/ 예수 그리스도_이승하/ 오규원_김성춘/ 오현스님_홍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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