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낙월도, 물안개에 갇힌/ 김금용

검지 정숙자 2024. 4. 9. 17:00

 

    낙월도, 물안개에 갇힌

 

     김금용

 

 

  전남 영광 끝머리

  서쪽 바다 낙월도에서

  당분간 나는 패랭이꽃이나 되리

 

  어쩌다 찾아오는 외지인에게

  꺾이고 휘둘리며 묻어뒀던 사랑

  종아리에 달라붙는 끈끈이주걱풀꽃인 듯

  하얗게 가슴 부풀려 서 있을 터

 

  달은 져서 비릿한 갯벌에 숨고

  물안개에 갇힌 낙월도

  사흘째 뭍으로 나갈 기미도 없이

  당분간의 이 유예가 행복할 뿐,

  법성포 순도 높은 증류수 몇 잔에 취해

  한 눈빛으로 돌아드는 꺽새 춤사위

  열 손가락 닿는 대로 화들짝 깨어나는

  자귀나무의 연지빛 사랑

  때늦은 설렘 빈 잔에 채워

  새벽 열리는 퍼런 하늘가로 뿌려 버릴 터

 

  품에 안기면 곧 부스러질

  눈물 일렁이며 뱃전 쫓는

  하얀 포말로 달려가 서 있을 터  

    -전문(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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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와 썸 타다』 <초대시> 에서/ 2023. 12. 26. <미네르바> 펴냄  

* 김금용/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물의 시간이 온다』『각을 끌어안다』『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넘치는 그늘』『광화문 쟈콥』, 번역시집『문화혁명이 낳은 중국현대시』『나의 시에게』『오늘 그리고 내일今天與明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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