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바다/ 강우식

검지 정숙자 2024. 4. 8. 19:48

 

    바다

 

    강우식

 

 

  1

  바다 곁에 오면 시끄러운 세상사

  파도에게 도거리 줘 말끔히 밀어내고 싶다

  바다 곁에 오면 갑자기 율리시즈처럼

  배 밑창이 울리도록 가슴을 쾅쾅 치고 싶다

 

  2

  바다에 한번 빠지면 그 심연의 밑바닥까지 간다

  그 심연의 세상은 너무 어둡고 캄캄하다

  절망의 외침보다 더 크고 묵중한 침묵이 있다

  경험한다는 거 배운다는 거 안다는 치 너무 하찮다

  물이 커서 놀기 좋고 뜨기 좋다고 하지만

  그 죄여 오는 압력을 어이 감당하랴

  발버둥질 친다는 거 자체가 꿈속의 행동 같다

  모든 것이 항공모함 같은 육중한 문이면서

  모든 것이 문이 없는 첩첩산중과 같은 감옥이다

  인간은 그런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살아간다

 

  3

  생맥주 잔 만한 내 머리가 바다 쪽으로 기운다

  파도가 흰 거품을 일으키며 출렁 담긴다

  젊은 날에는 가슴에 바다를 통째 담았는데

  이제는 눈으로만 가진다

  그래도 맥주 한 조끼 들이켜듯 시원하다

     -전문(p.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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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와 썸 타다』 <초대시> 에서/ 2023. 12. 26. <미네르바> 펴냄  

  * 강우식/ 196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행시초』『사행시초』『마추픽추』『바이칼』『백야』『시인이여, 시여』『바보산수』『죽마고우』『꽃을 꺾기 시작하면서』『사행시초 2』『소이부답』등 다수, 시론집『절망과 구원의 시학』『한국 상징주의 시 연구』『한국 현대시의 존재성 연구』『육감과 혼』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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