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배홍배_시에세이『빵 냄새가 나는 음악』/ 모차르트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검지 정숙자 2024. 2. 15. 02:38

<에세이 한 편>

 

    모차르트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모차르트: 미뉴엣 G장조 (네 살 때 쓴 첫 작품)

 

     배홍배

 

 

  80이 넘은 노 피아니스트가 고목나무 가지처럼 마디가 울퉁불퉁한 손가락으로 4살짜리 어린 아이가 작곡한 곡을 친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노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천상의 긴장감을 느끼는 듯 이따금 꼬이는 손가락이 건반을 더듬거린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나면 먼저 모차르트와 비교를 한다. 모차르트는 그만큼 천재 중의 천재로 알려졌다. 그가 음악을 작곡하는 스타일은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가 그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와 입과 손을 통해 음악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35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600여 곡을 남긴 그는 누구보다 음악적으로 장수한 셈이었고 그에 따른 이야기도 많다. 2002년 9.11테러 1주기 때 당시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레퀴엠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진 것은 모차르트가 서양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준다. (p. 210)

 

  쿠스타프 말러와 지휘자 칼 뵘이 숨을 거둘 때 마지막 말은 "오, 모차르트'였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음악가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35세)는 3살 때 클라비어를 배우고, 5살 때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을 프로급으로 연주했다. 그리고 Wolfie란 별명으로 불과 여섯 살의 나이에 국왕 앞에서 연주하면서 8세 때부터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해 40개가 넘는 그의 교향곡 절반을 19세 이전에 썼던 절대적인 천재였다.  (p. 210-211)

 

  1984년 영화 아마데우스의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차트에 56번 올라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으로선 가장 성공한 케이스다. 1991년엔 필립스에서 모차르트의 CD 180장을 만들었는데, 한 작곡가의 곡을 녹음한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방대한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다. 이 씨디에는 200시간 이상의 음악이 들어있고 케이스에 넣어 쌓아둔 높이만도 6.5피트가 넘는다.     (p. 211) 

 

  □ 모차르트는 여러 애완동물을 좋아했는데, 개와 찌르레기, 카나리아 같은 새와 말을 좋아하면서 연주 여행 차 멀리 나왔을 때도 누나에게 개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자주 보냈다. 그의 여행 기간은 생애 36년 중 14년이나 되고,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만큼 작곡한 음악 장르도 다양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뛰어난 연주 실력과 함께 20세 이전에 이미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직업을 구하는 데 소비하고,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못한 채 음악적 능력이 절정기에 오른 35세로 사망했다. (p. 211) 

 

  □ 짧은 생애 동안에 많은 곡들을 남긴 모차르트는 글자보다 음표를 쓰는 것을 더 먼저 배웠다. 음악은 음표가 아닌 음표 사이의 침묵이란 명언을 남기기도 한 모차르트는 아버지, 누나와 함께 전 유럽의 궁정이나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연주 활동을 했다. 당시엔 여행하며 사는 일이 무척 힘든 것이어서 그들은 길 위에서 심한 병치레를 해야만 했는데, 모차르트가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연구가들은 모차르트의 창백하고 왜소하며 예민한 성격이 그의 어린 시절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p. 212) 

 

  □ 음악을 한 번 들으면 그대로 악보에 옮겨 썼던 모차르트는 불과 14살에 오페라 <포토의 왕 미트리다테>를 쓰고 1770년 12월 밀라노에서 초연을 갖는 기염을 토한다. 모차르트가 어린아이로서 연주했던 곡은 갤런트 스타일이라고 하는 로코코식 예술 사조의 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특징은 보다 유머스럽고 활발하며 장난기 있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는 후에 갤런트 스타일에서 고전 스타일의 전형으로 옮겨간다. (p. 212) 

 

  □ '모차르트의 귀'란 말이 있듯 기형적인 귀를 가지고 태어난 모차르트는 하는 행동도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 사촌 누나를 포함해 누나들과 이야기할 때는 그들만의 비밀 언어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누이 마리아 안나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지만 그녀가 결혼할 나이에 이르자 부친은 대중 공연을 못하게 한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활동과 혼에 있어 아버지의 뜻을 잘 따르지 않았던 것에 반해 누이 안나는 아버지의 말을 잘 받아들였다. (p. 212~213) 

 

  □ 1791년 35세로 비인에서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 완벽한 푸가와 오페라를 작곡한 것 외에도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종종 외설적인 이야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21살 때 19살인 그의 사촌 누이 마리안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좋은 밤 보내, 침대에 똥도 한 바가지 싸고." 어쩌면 이건 모차르트가 사람들이 평소 모두 서로에게 이상한 말들을 썼던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p. 213) 

 

  □ 1993년 처음 모차르트 효과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이는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믿음이다. 모차르트 음악은 간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젖소의 젖을 많이 나오게 한다고 한다. 최근 스위스의 하수 처리 센터에선 모차르트 음악이 미생물이 하수 정화시키는 것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센터에서 사용하는 음악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다. (p. 213) 

 

   모차르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모차르트의 시신은 당시의 풍습대로 평장을 했는데, 장례식도 없었고 묘지석조차 남기지 않은 기이한 그의 죽음처럼 그의 탄생 또한 별다르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모차르트의 탄생에 대하여 신의 기적이라고 쓰고 있다. 위로 다섯 아이가 유아기 때 사망한 모차르트는 태어날 때 너무나 작고 약해 살 수 없을 것이라 보였던 것이다. (p. 213~214) 

 

   모차르트가 쓴 곡들은 600곡이 넘는데 대부분은 교향곡류, 협주곡, 실내음악 그리고 오페라와 합창 음악들이다. 이 중 알려진 것들은 41개의 교향곡, 27개의 피아노 협주곡, 5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27개의 콘서트 아리아, 23개의 현악 4중주, 18개의 미사곡, 그리고 22개의 오페라들이다. 이런 모차르트가 황금 기사복을 입고 있는 초상화가 있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가 로마에 머물고 있을 때 교황이 그에게 영예로운 황금기사 자격을 수여한 것이다. (p. 214~215) 

 

   모차르트가 서양 음악에 끼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다. 요셉 하이든이 말하길 앞으로 100년은 모차르트 같은 천재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시스턴 성당을 방문했을 때 알레그리미제레레 악보를 암기해서 그대로 악보에 옮겨 써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악보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인데 한 번 읽고 암보해서 그대로 악보에 옮겨 쓴 일화는 그의 천재성을 뒷받침하는 유명한 일화다. (p. 215) 

 

   모차르트가 어렸을 때 유일한 스승은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음악은 물론 다른 것들도 교육시켰다. 그러나 콘스탄체를 변덕이 심한 여자로 보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19세의 콘스탄체와 1782년 8월 4일 결혼을 했다. 모차르트의 미사 C단조는 아버지와 누나가 자신의 아내 콘스탄체를 냉담하게 대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 쓴 것이다. 모차르트가 죽은 지 18년 후 콘스탄체는 다시 결혼을 했는데 새 남편이 모차르트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을 도왔다. (p. 215) 

 

   모차르트의 최대 라이벌은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르였다. 모차르트보다 40년을 더 살면서 곡을 쓴 살리에르는 말년에 자신이 모차르트를 독살했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늙은 노인의 횡설수설이라 생각했다. 모차르트가 죽었을 때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시신이 누워있는 침대로 올라가 그를 껴안았다. 남편의 병이 자신에게 옮겨져 함께 죽고자 했던 것이다. (p. 216) 

 

   모차르트가 어렸을 때 모차르트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자신과 결혼해주길 청했다. 모차르트는 비인에 머물면서 황후 마리아 테레사를 위해 연주를 하고 있을 때였다. 황후는 자신의 어린 딸에게 청혼한 어린 모차르트가 우습고 귀여웠다. 그 딸이 나중에 프랑스 루이 16세의 황비가 된 바로 그 마리 앙투아네트다. (p. 216) 

  □ 모차르트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게오르그 프리데릭 헨델을 공부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모차르트의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마술피리>의 푸가 페시지 부분과 교향곡 41번의 피날레 부분이 그렇다. 1784년 비인에서 만난 하이든과도 친구가 되었다. 두 음악가는 때로는 함께 즉흥적으로 현악 4중주를 연주하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6개의 현악 4중주를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p. 216) 

  □ 1786년에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과 1787년에 쓴 <돈 죠반니>가 대성공을 거두고, 그 작품들의 비범함으로 인해 최고의 절정기를 보내던 모차르트가 1787년 조세프 2세 황제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 젊은 베토벤(1770~1827, 57세)이 몇 주 동안 비인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는
모차르트에게 공부하고 싶어 했으나 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이 두 사람이 정말 만났는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p. 217) 

  □ 모차르트는 1791년 9월 6일 자신의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가 초연되고 있을 때 병석에 누웠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5일 집에서 숨을 거둔다. 그는 병석에서조차도 그의 레퀴엠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사망 원인이 적어도 118개나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류마티스 열병과, 인플렌자, 선모충감염, 수은중독, 신장질환 그리고 연쇄구균감염 등이 원인으로 주장된다. (p. 217) 

  □ 모차르트는 성 마르크스 묘지의 일반인들 무덤에 묻혔다. 일반 무덤은 귀족들의 무덤과는 달리 매장 10년 후에 발굴하게 되어 있었는데,
모차르트의 유골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1801년 요셉 로드메이어라는 사람이 비인의 한 공동묘지에서 모차르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파냈다. 하지만 여러 검증을 통해서도 그것이 정말 모차르트의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그 유골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재단에 보관되어 있다. (p. 217~218) 

  □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던 모차르트는 여러 전기학자들에 따르면 왜소한 체구에 강렬한 눈빛을 지녔다고 한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고, 마르고 창백한 피부에 머릿결은 고왔으며 옷을 잘 입는 멋쟁이였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목소리는 테너였으며 왼손잡이로 평생 카톨릭 신자로 살면서 종교적인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p. 218) 

  □
모차르트가 죽은 뒤 그의 아내  콘스탄체 황제에게 탄원하여 자신과 두 아이들을 위한 연금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모차르트 음악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작품들을 출판하기도 했으나 모차르트의 스케치와 초고들을 상당 부분 훼손하거나 없애버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여섯 아이를 두었으나 넷은 유아기 때 죽고 두 아들만 살아남았다. 칼과 프란츠 두 아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남기지 않았다. (p. 218)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에 따르면 그는 말년에 자신이 살리에르(1750~1825, 死 75세)를 만나 식사를 하고 온 후 독약에 오염되었으며 자신을 위한 레퀴엠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1766~1803, 37세)가 완성했는데 오늘날 연주되는 것이 쥐스마이어 버전이다. 아직까지도 모차르트가 레퀴엠의 어디까지를 썼느냐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p. 218~219)

 

 * 본 책에서는 유명한 곡으로 알려져 있진 않으나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듣기 쉽고 편한 것들을 146곡 선정하여 시적인 분위기의 이야기와 해설을 덧붙였다. 또한 책을 보면서 휴대폰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곡 한 곡 모두) 큐알코드를 만들어 올렸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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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홍배 著_시에세이 『빵 냄새가 나는 음악』/ 2023. 11. 20. <시산맥사> 펴냄

  * 배홍배/ 1953 장흥 출생, 2000년『현대시』로 등단, 시집『단단한 새』『바람의 색깔』『라르게토를 위하여』, 산문집『추억으로 가는 간이역『풍경과 간이역』『송가인에서 베토벤까지』『Classic 명곡 205』등, 오디오평론가, 사진가, 번역 활동,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