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같은 하늘 다른 시간을 살고 간 두 천재 이야기_김삿갓 & 굴원/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4. 1. 2. 03:24

 

    같은 하늘 다른 시간을 살고 간 두 천재 이야기

      - 김삿갓 & 굴원-

 

      정숙자

 

 

  1. 난고 김병연의 가족관계

  : 1807년 경기도 양주에서 나고 자랐다. 조부평안도 선천부사 김익순, 아버지는 김안근, 어머니는 함평 이씨, 형 김병하와 동생 김병두가 있었고. 부인은 장수 황씨, 자식으로는 장남 김학균과 차남 김익균, 삼남 김영규를 두었다.

 : 1863년 김병연이 56세로 전라도 동복 땅(지금의 화순)에서 객사했다. 행려병자로 연고 없이 사망한 이들을 묻는 똥뫼라는 곳에 묻혔지만, 3년 뒤 아들 김익균이 유해를 영월로 옮겨 장사 지냈다.

 : 김삿갓 유적보존회 구성, (천재적인)김삿갓의 (문학적) 유산(1992)발간.

 

 

  2. 조부 선천부사 김익순으로부터 시작된

  : 김병연의 나이 4살 때(1811)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그때 조부가 반군에 항복했고, 마침내 죄를 판결받아 순조 임신년(1812)에 사형당했는데, 김병연은 겨우 여섯 살이었고 그로 인해 집안은 폐족이 되었다.

  김익순의 종복 김성수: 그 불행한 때 김병연의 형은 여덟 살, 아우는 젖먹이였다고 한다. 마침 김익순의 종복 김성수金聖秀가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김병연 삼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주었다.

  영월: 김병연의 가족은 여주, 가평으로 전전하다가 부친 김안근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모친 함평 이씨가 삼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했다고 전한다.

  방랑: 영월에 정착한 이후 김병연은 글공부에 힘써 스물의 나이에 향시를 보았으며, 거기서 장원급제를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향시에 합격한 것으로는 장원급제라고 하지 않는다. 아직 회시會試를 치러 수석한 것이 아니므로 급제라고는 말할 수 없다. 장원급제란 소과 즉 생원시와 진사과의 회시에서 수석을 하거나 대과 즉 문과 전시殿試에서 수석한 것을 가리킨다.

  관서지방(평남, 평북의 별칭)노진魯禛이란 자가 시를 잘 짓되 김삿갓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김삿갓을 축출하고자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를 지어 세상에 이름이 있었다. 김병연이 그 시를 보고 한 대접 술을 들이켜고 낭랑하게 읊고는 참으로 멋진 시로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피를 토하고 다시는 관서 땅을 밟지 아니했다. 늘 황해도 땅을 왕래했는데, 구월산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는 낙척불기落拓不羈하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방랑객이 되었다.

 

  3. 시 세계

  기록을 보면, 김병연이 죄인을 자처한 것은 향시에서 조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시제로 장원을 한 후 모친으로부터 집안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다. 폐족의 사람이므로 천지간의 죄인이라 여겨 삿갓을 쓰고 다닌 것이다. 김병연이 설사 영월의 과장에 들어가 시를 지었다고 해도 이런 시를 지었을 리가 없다.

 

  군주를 잊은 이 날 또한 육친을 잊은 것이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망군시일우망친 忘君是日又忘親

  일사유경만사의  一死猶輕萬死宜

  춘추필법이지부 春秋筆法爾知否

  차사유전동국사 此事流傳東國史

  -논정가산사論鄭嘉山事 탄김익순죄통우천歎金益淳罪通于天 (전문)

   

  위 시는 김삿갓을 조롱하려고 누군가 지은 고풍이며, 앞서 말한 구월산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昨年九月九月山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今年九月過九月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年年九月過九月

  구월산 풍경은 늘 구월일세 九月山光長九月

     -김삿갓, 구월산九月山峰 (전문)

 

  김병연은 방랑 중에 글 내기도 많이 했으며, 독설과 해학의 달인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그들의 어리석음, 교만함에 대해 독설을 뿜었다. 하지만 독설에 해학을 겸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위로했다. 독설과 해학을 겸하는 것이 김삿갓의 시법이었다.

  한편 김삿갓 시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온 것은 육담풍월이다. 이 육담풍월은 조선 민간에서 유행한 고풍 한시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한문풍월은 지을 줄 몰라도 언문풍월은 지을 줄 안다는 꼴로 쓰였고, 언문풍월이란 말에 이끌려 한문풍월이란 말도 생겨났다.

  단 김병연만이 김삿갓이었던 것은 아니다. 김삿갓 이전에도 삿갓을 쓰고 다니던 기인들이 있었고, 김병연과 같은 시대에는 유사 김삿갓들이 있었다. 복수이자 단수인 그의 매력이 시에 넘쳐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김삿갓은 정격의 장편고시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많은 문학사가들은 김삿갓 시의 파격성에 주목했다. 한시에서 그가 이룬 형식과 내용의 파격은 국민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준 최초의 작가라고 논평했다. 일탈된 형식, 독특한 해학, 인간적 고뇌, 사회 실상의 반영 등을 통해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혀주었다는 것이다.

 

  김삿갓의 천재적인 시 시시비비시是是非非詩는 시비是非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한 세상을 향한 야유의 뜻을 지닌다.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음을 옳다 함이 아니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이 옳지 않음도 아니다.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은 시비가 옳은 것 아니니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이것이 시빗거리다.

 

  시시비비비시시 是是非非非是是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非非是

  시비비시시비비 是非非是是非非 시시비비시시비 是是非非是是非

     - 김삿갓, 시시비비시是是非非詩 (전문)

 

 

  4. 우리의 시성詩聖 김삿갓의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상해詳解 김립시집(1939), 대증보판 김립시집(1941), 풍자시인 김삿갓등을 간행하기도 한 이응수는 김병연을 일컬어 시성詩聖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라고 확신하여 마지않았다. 그의 인간적인/ 지극한 면모를 보여주는 우화암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절하고 올리는 기원문」을 옮겨적으며 김삿갓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이 기원문은 어구 전철의 묘를 보여주는 글이 아니므로 한문 병기를 생략함)

 

  삼천 년 광겁의 세월에 보살이 감응하고

  오십 나이의 깊은 정성으로 순임금처럼 부모를 사모하노라.

  어린 까마귀는 자주 울어 염불하는 새를 전송하고

  슬픈 눈물은 하늘을 감동시켜 꽃비가 내리누나.

  승평의 불국에 태어나지 못해 한스럽고

  모친을 잃고 나니 풍진 세상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워라.

  백일도 광채를 잃을 만큼 단지 외쳐 울부짖는다만

  푸른 하늘이 만일 뜻이 있다면 돌아보아 줄 것인지.

  훌훌 이별했다간 재회하길 삼생에 바라나

  십 년을 강남에 떠돌며 서리 이슬에 마음 아파라.

  기원문 지어 색동 적삼으로 호소할 길 없더니

  화우암 선방을 마침 지나가던 때,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함이 본성이시라면

  적멸의 신통한 영험으로 나의 폐부를 살피소서.

  속인도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기도를 올려

  밤마다 밝은 등에 등잔꽃이 심지에 맺히네.

  인간세계에 자식이 모친을 이별함보다 더 애석한 일 없나니

  천보 연간 승평을 여생에 몇 번이나 겪었던가.

  감초의 묵은 뿌리 위로 달은 여전히 걸려 있고

  대초의 지난 인연에 한 해가 이미 저물었다.

  평생의 한 가지 소원을 나는 글로 적어

  빈 배로 자비의 바다를 건너고자 해서라네

  관음보살은 다른 세상에서는 역시 대중의 어머니로서

  남의 깊은 마음과 통할 혜안을 갖추었다.

  신령한 병풍 앞에 한 조각 달은 마음을 희게 비추고

  자규(두견)는 세 번 울어, 촉제는 피를 쏟으며 호소한다.

  새벽 구름 깔린 속에 두 번 절하고 무릎을 꿇나니

  백팔염주가 이렇게 굴러왔다간 저쪽에 멈추네.

  아미타불도 나의 지극한 성품을 알아서

  불전 앞 학이 새끼 먹이는 광경을 웃으며 가리킨다.

  사람이 측달의 정이 있으면 반드시 하늘을 감동시키리니

  부처가 어찌 허무하여 조각상처럼 앉아 있기만 하랴.

   -김삿갓, 우화암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절하고 올리는 기원문(전문)

 

   # 출전出典: 지은이 심경호 『김삿갓 한시/金笠 漢詩』 (서정시학, 2008)

         &

 

  1. 굴원屈原의 가문과 역사적 배경

  : B.C. 343(?) 중국 역사상 대변혁기인 춘추 전국시대에 태어났다. 그는 당시 남방의 대국이었던 초나라 태생으로 초를 건국했던 왕족 출신의 귀족이었다. 명문가의 후예답게 그는 타고난 인품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 B.C. 278(?) 그가 왕족 출신으로서 또 타고난 능력으로 당시 회왕懷王에게 신임을 얻고 적극적으로 국정에 참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간신배들의 거짓 충언이나 이간질에 두 번이나 추방을 당했고, 결국 중국의 호남성 장사에서 멀지 않은 멱라강覓羅江에 돌덩이를 안고 뛰어들어 65세 무렵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 그가 투신한 55일 단오절을 중국인들은 시인절詩人節이라고도 부른다. 당시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그날이 오면 어부들은 연잎에 싼 밥을 물에 던지며 물고기야, 물고기야. 이 밥 먹고 충신을 물어뜯지 말아라.” 흐느끼며 기원한다고 전해진다.

 

  2. 추방된 정치가로서의 고독한

  : 좌도란 내치와 외교를 동시에 수행하는 매우 중요한 관직이었다. 젊고 영민한 굴원에 대한 회왕의 신임은 한때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추방된 정치가 굴원이 유배지에서 억울함과 상처, 고독과 애증의 심정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갈 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인이 되어 갔다. 굴원은 석송惜誦이라는 시편의 한 구절에서 가감 없는 마음 그대로를 드러냈다.

 

  애통한 하소연으로 근심을 드러내고 惜誦以致慾兮

  분노를 발설하여 진정한 마음을 토로한다 發憤以抒情

   -굴원, 석송惜誦(부분)

 

  어부사: 더위가 막 시작되던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한 노인이 홀로 강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여름 풀벌레 소리가 적막했다. 노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고 깡마른 몸매는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불어오는 강바람에 산발한 머리가 제멋대로 흩날렸다. 몹시 초라한 행색이었다 하지만 움푹 꺼진 눈에서 흘러나오는 형형한 눈빛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추방당한 강남의 어느 물가에서 굴원과 어부가 나누었다는 대화 한 꼭지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물가를 산책하고 있을 때 마침 지나가던 어부가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하였다.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취했는데 나 혼자만 깨어 있소. 그런 까닭에 추방당했다오.” 어부가 다시 말했다. “성인이란 외물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처신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혼탁하다면, 어째서 진흙을 휘저어 함께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취했다면, 어째서 함께 어울려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째서 혼자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행동하여 추방을 자초하십니까?” 굴원이 노인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목욕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가 깨끗한 몸에다 더러운 먼지와 때를 묻히려 하겠소. 내 차라리 장강에 몸을 던져 고기 배 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쓰겠소하였다. 어부가 듣고는 빙그레 웃더니 노를 저어 가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닦으리다하고는 다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부는 물론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굴원은 자신의 세계관과 대립하는 어부를 등장시켜 스스로 추구했던 신념과 이상을 계시하고자 했다. 추방된 원인이기도 한 그가 추구했던 핵심 가치는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취했는데 혼자만 깨어있고자 한 삶의 태도이다. 이것은 정치가인 굴원의 삶의 지표인 동시에 시인으로서의 굴원의 중취독성衆醉獨醒의 시학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모두 취해 있을 때 홀로 깨어 있을 용기에는 시인의 비타협적 저항 정신이 배면에 자리하고 있다. 굴원의 비극이 탄생한 지점이기도 하다.

 

  3. 시 세계

  굴원이 남긴 작품군을 묶어서 '초사楚辭'라고 부른다. ’초나라의 말로 된 초나라의 노래란 뜻이다. 초사 훨씬 이전에 중국시의 효시인 시경詩經이 있지만 시경이 중국 민족 공동체의 집단 노래, 집체 인격이라면 '초사' 중화민족이 부른 최초의 개성적인 기명인의 노래. 시경이 익명성의 합창이라면, 초사는 굴원이라는 기명인의 독창이다. 굴원의 삶과 글쓰기는 시인이란 누구인가를 최초로 질문하게 하였다. 그는 중국 문학사에서 최초의 시인으로 호출되기도 하지만, 그의 생애가 보여준 충군애국의 정신은 중국인들이 국난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를 그리워하고 숭모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회사懷沙는 굴원의 절망과 비장한 결단을 고백하는 절명시絶命詩. ’돌을 가슴에 품다는 뜻이니 돌을 품에 안고 강물로 뛰어드는 굴원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세상이 혼탁해 나를 알아주는 이 없으니 世溷濁莫吾知

사람 마음 하소연할 길 없구나 人心不可謂兮

좋은 바탕과 뜻을 품고 있어도 懷情抱質

홀로 고독하게 짝할 사람이 없네 獨無匹兮

백락이 이미 죽고 없으니 伯樂旣歿

누가 천리마를 알아볼까 驥將焉程兮

만민이 태어날 때는 萬民槀命

저마다 생사의 자리가 정해져 있네 各有所錯兮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혔으니 定心廣志

내 무엇을 두려워하리 余下畏懼兮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아니 知死不可讓

미련 두고 싶지 않아라 願勿愛兮

세상 군자들에게 분명히 말하느니 明以告君子

내 장차 죽음으로 그대들의 본보기가 되리 吾將以爲類兮

  -굴원, 회사(懷沙)(부분)

 

  4. 굴원의 대표작인 이소離騷

  모두 3732,490자에 달하는 중국 최초이자 최대의 장편시 이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상상과 환상성이다. 상상과 환상을 통해 굴원은 암울한 현실과 절망을 초월하고자 했다. 신화와 전설 무풍巫風이 맥동하는 천상으로의 여행은 이소의 낭만과 신비의 절정이다.

  살아서는 정치가였던 그, 죽어서는 시인으로 부활한 그, 그는 생전에 단 한 번도 시인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투신은 실패한 정치가가 시인으로 재생하는 의의가 되었다.

 

네 마리 용을 몰아 봉황 수레를 타고 駟玉叫以乘鷖兮

바람 불어 오길 기다려 하늘로 오르네 溘埃風余上征

아침에 순임금 묻힌 창오를 출발하여 朝發軔於蒼梧兮

저녁에 곤륜산 현포에 닿았네 夕余至乎縣圃

(중략)

이 신비한 문전에서 잠시 머물려고 했더니 慾少留此靈鎖兮

해가 벌써 지려고 하는구나 日忽忽其將暮

태양신 희화에게 명해 해 수레를 멈추게 하고 吾令羲和弭節兮

해지는 엄자산을 바라보며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네 望崦嵫而勿迫

길은 아득히 멀고 험난해도 路曼曼其脩遠兮

나는 오르고 내리며 찾아 헤매리 吾將上下而求索

내 말을 함지에서 물 먹이고 飮余馬於咸池兮

말고삐를 부상 나무에 매어 두네 總余轡乎扶桑

약목을 꺾어 서산에 지는 해를 털어 버리고 折若木以拂日兮

잠시 여기서 소요하며 노니네 聊逍遙以相羊

달의 신 망서를 앞세우고 前望舒使先驅兮

바람의 신 비렴을 뒤따르게 하네 後飛廉使奔屬

난새와 봉황이 날 위해 호위하는데 鸞凰爲余先戒兮

천둥 신 뇌사는 내게 준비가 덜 됐다고 하네 雷師告余以未具

나는 봉황새로 하여금 높이 날아올라 吾令鳳鳥飛騰兮

밤낮으로 멈추지 말고 날아가도록 하네 繼之以日夜

휘날리는 돌개바람도 한데 모여서 飄風屯其相離兮

오색구름 이끌고 나를 영접해 하늘로 오르네 帥雲霓而來御

   -굴원, 이소離騷(부분)

 

 # 출전出典: 지은이 김경엽 『중국식 표정』 「최초의 시인 굴원과 ’중취독성‘의 시학 (파란, 2019)

 

 * 블로그 註: 위 <강의 자료집> '부클릿'을 갖고 계신 분들께, 

 -부클릿 9쪽의 3행 중 "홀로 고독하게 짝한 사람이 없네"에서 "짝할"로 바로잡습니다

 -부클릭 9쪽 '굴원의 대표작인 「이소離騷」' 소개글 도입부 첫 행에서 "중국 최초이자 초대의 장편시"를 "최대의"로 바로잡습니다. 이 부분은 편집 과정의 오류가 아니라, 필자의 원고에 착오가 있었음을 밝힙니다. 이 점 널리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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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회 김삿갓문화제 문학인의 밤 <강의 자료집>에서

· : 2023년 9월 22일 금요일 19:00~21:00

· 주최: 영월군

· 주관: 영월문화관광재단 / (사)한국문인협회 영월지부

 김삿갓문학상 수상자는 이듬해 시상식과 만찬 후 특강을 하는 규정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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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숙자 시인 약력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과 수료

·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 시집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 『그리워서』 『이 화려한 침묵』 『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뿌리 깊은 달』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공검 & 굴원』

· 산문집 『밝은음자리표』 『행복음자리표』

· 수상 <황진이문학상/ 제1회, 1987> <들소리문학상/ 제8회, 2008> <질마재문학상/ 제9회, 2018> <동국문학상/ 제32회, 2019> <김삿갓문학상/ 제18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