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봄은 끈이로되/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3. 2. 16. 01:30

 

    봄은 끈이로되

      - 미망인

 

    정숙자

 

 

  메마른 땅과 바람의 중간에서

  들쑥날쑥 어두운 태양

 

  번갯불 몹시 튀어

  짓찢기고 타더라도

  뭣 하나 떨어뜨림 버림도 없는, 창공은

  장마철 몇 억 겁을 긋고 다듬어 저 품이 되었을까?

 

  어느 먼 곳에 눈을 묻고 걸었기에

  햇빛 나른한 보도블록 위

  목숨 줄 풀었는지

 

  지렁이야, 지렁이야, 아직 파란 지렁이야

 

  꿈꾸지 않고 사는 법 배워야겠다

  처음 꿈꾼 게 꿈이었는데

  마지막 버릴 것도 꿈이었구나

 

  오래 헤아린 방향들, 발걸음도 줄여야겠다

  처음 내다본 게 길이었거늘

  최후에 덮을 것도 그거였구나

 

  말 없는 서울의 모퉁이에서

  구름 한 서랍 흘러간다

    -『들소리문학』 2013-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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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공검 & 굴원』(3부/ p. 92-93)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