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전문
미래서정 10호,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두 자리 숫자의 무게
정혜영/ 시인, 서정시학회 회장
『미래서정』 10호를 세상에 내놓는다. 숫자가 두 자리로 바뀌는 것이 기쁘고도 무겁다. 서정시학회 동인은 『서정시학』으로 등단한 분들과 『서정시학』에서 책을 낸 분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학에 대한 진지한 열정을 가진 훌륭한 분들이 최동호 교수님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서정의 미래, 미래의 서정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할 것인가. 서정시학회 동인들만의 질문은 아닐 것이다. 학자들은 학자들대로 문학 현장에 있는 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무게를 감당하고 유지할 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이후, 우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미증유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한국의 강남대로, 늘 그 시간이면 강남주차장으로 변모하는 시간, 자동차로 강남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밤 11시 30분.
세기말을 그린 영화 속으로 들어선 줄 알았다. 캄캄한 강남대로, 상가들의 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는지 자동차들도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싸늘한 느낌에 전율이 일었다.
일주일 내내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루다가 출근 시간이 가까이 와서야 잠시 썰렁해지는 곳. 그것이 내가 알고 있던 강남대로의 풍경이었다.
뭘 할 수 있을까, 지구의 수명은 얼마나 남은 것일까. 하늘길이 끊어지고 몇 나라의 국경이 닫히고 학교들이 닫혔다. 이 지구적 재난 앞에서 문학이란 무엇일까, 마스크 없는 일상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2021년 11월 현재 미국에서는 77만 명, 영국은 14만 명 넘은 숫자가 코로나19로 사망했다. 21세기 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초기에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해열제로 버티다 죽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 대부분의 일상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듯 평온한 것이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이 믿기지 않는 일들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은 2021년 11월, '위드 코로나'를 선포했다. 문학은,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지훈 시인은 시, '지옥기'에서 '스스로의 지도를 못 가지면 이 하늘에는 한 송이 꽃도 보이지 않는다고 믿으십시오.'라고 적었다. 이 지옥 같은 날들은 조지훈의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그 꿈을 시라고 읽는다. 물론 이때의 시는 형식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상징으로서의 시다.
시 쓰는 사람으로서 적어본다. '스스로의 시를 못 가지면 이 하늘에는 한 송이 꽃도 보이지 않는다고 믿으십시오.' 10호 문턱을 넘는 『미래서정』, 각자의 기도가 합송되는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온다. 우리 각자가 골똘하게 고민하고 먹먹하게 잘할 수 있기를 감히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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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회편 『미래서정』(2021 · 제10호) 에서/ 2021. 12. 31. <서정시학> 펴냄
* 정혜영/ 2006년『서정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이혼을 결심하는 저녁에는』, 서정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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