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사의재(四宜齋) 외 1편/ 김수엽

검지 정숙자 2022. 4. 6. 02:44

 

    사의재四宜齋* 외 1편

     - 주모상主母像

 

    김수엽 

 

 

  1. 순간瞬間

 

  칼바람에 남쪽으로 떠밀려 온 그날 밤

  강진 땅 초입에서 꼬꾸라진 야윈 육신

  주모는

  술병에 담긴 따뜻한 정을 따른다

 

  다산은 탁주 한 잔에

  얼굴이 붉어졌고

  그녀의 눈에서는 발효된 눈물 난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

  감탄사가 관통했다

 

  2. 가정假定

 

  육체를 열어보니 막걸리 냄새가 난다 

  두 사람 살 틈으로 달빛이 차오르고

  처녀는 두려움 없이

  온 별밤을 선물했다

 

  어색한 아침 볕이 두 사람을 덮쳐 왔다

  사랑 묻은 손맛으로 차려낸 진수성찬

  다산은

  더 멀쩡해진 호흡으로 길을 떠났다

     -전문-

 

 

    * 사의재: 전라남도 강진 소재. 다산이 유배를 와 처음 도착한 곳으로 지쳐 쓰러진 다산을 주모와 그의 딸이 따뜻하게 보살폈다고 함.

 

    ----------------

    차가운 별

 

 

  이 세상 눅눅해서 두렵고 서러웠다

  가난을 구겨 넣은 반지하의 그 어둠

  햇볕이

  한 뼘 창에 와

  문 두드리는 한낮인데

 

  젊음도 녹이 슬고 사람 냄새 그리운 날

  세 모녀 지켜보는 건 네 벽의 곰팡이뿐

  차라리

  손때 낀 세상

  내려놓고 떠날 수밖에

 

  공평한 햇볕조차 소유 못한 이 세상

  마지막 방값을 챙겨두고 떠나던 날

  수많은 사람 소리가

  퉁퉁 부어 아팠다

    -전문-

 

   *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

  * 시조집 『등으로는 안을 수 없다』에서/ 2022. 3. 28. <상상인> 펴냄   

  * 김수엽/ 1958년 전북 삼례 출생, 1992년 ⟪중앙일보⟫ 연말 장원 &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골 죽도 미역 외 1편  (0) 2022.04.09
직지, 길을 묻는다/ 한이나  (0) 2022.04.09
만경강 죽다/ 김수엽  (0) 2022.04.06
안착 외 1편/ 문인귀  (0) 2022.04.03
노란 꽃 하나가/ 문인귀  (0) 2022.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