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재四宜齋* 외 1편
- 주모상主母像
김수엽
1. 순간瞬間
칼바람에 남쪽으로 떠밀려 온 그날 밤
강진 땅 초입에서 꼬꾸라진 야윈 육신
주모는
술병에 담긴 따뜻한 정을 따른다
다산은 탁주 한 잔에
얼굴이 붉어졌고
그녀의 눈에서는 발효된 눈물 난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
감탄사가 관통했다
2. 가정假定
육체를 열어보니 막걸리 냄새가 난다
두 사람 살 틈으로 달빛이 차오르고
처녀는 두려움 없이
온 별밤을 선물했다
어색한 아침 볕이 두 사람을 덮쳐 왔다
사랑 묻은 손맛으로 차려낸 진수성찬
다산은
더 멀쩡해진 호흡으로 길을 떠났다
-전문-
* 사의재: 전라남도 강진 소재. 다산이 유배를 와 처음 도착한 곳으로 지쳐 쓰러진 다산을 주모와 그의 딸이 따뜻하게 보살폈다고 함.
----------------
차가운 별
이 세상 눅눅해서 두렵고 서러웠다
가난을 구겨 넣은 반지하의 그 어둠
햇볕이
한 뼘 창에 와
문 두드리는 한낮인데
젊음도 녹이 슬고 사람 냄새 그리운 날
세 모녀 지켜보는 건 네 벽의 곰팡이뿐
차라리
손때 낀 세상
내려놓고 떠날 수밖에
공평한 햇볕조차 소유 못한 이 세상
마지막 방값을 챙겨두고 떠나던 날
수많은 사람 소리가
퉁퉁 부어 아팠다
-전문-
*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
* 시조집 『등으로는 안을 수 없다』에서/ 2022. 3. 28. <상상인> 펴냄
* 김수엽/ 1958년 전북 삼례 출생, 1992년 ⟪중앙일보⟫ 연말 장원 &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맹골 죽도 미역 외 1편 (0) | 2022.04.09 |
|---|---|
| 직지, 길을 묻는다/ 한이나 (0) | 2022.04.09 |
| 만경강 죽다/ 김수엽 (0) | 2022.04.06 |
| 안착 외 1편/ 문인귀 (0) | 2022.04.03 |
| 노란 꽃 하나가/ 문인귀 (0) | 2022.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