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극복의 길(부분)/ 허영자

검지 정숙자 2022. 3. 8. 02:00

<권두언> 中

 

    극복의 길

 

    허영자/ 시인 · 한국문인협회 고문

 

 

  재앙의 늪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Corona)'라고 하는 괴질이 전 세계를 휩쓸며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극악한 범인이 변장과 위장을 하듯 '델타(Delta)'로 변질되고 다시 '오미크론(Omicron)'으로 변이되어 다음에는 어떤 변화, 어떤 사태가 올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구라는 푸른 별 위에 살고 있는 인류 전체가 환자가 되고 생사를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가림 없이 국경을 넘어, 피부색을 넘어, 이념을 넘어 병균의 침노는 가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방약과 치료제를 개발하여 방역과 치유에 혼신을 다하고 있으나 좀처럼 진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 번씩이나 예방주사를 맞아도 완전한 방역이 되지 않는다니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우한武漢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괴질을 '코로나 19'로 이름을 바꾸어 특정지역 발원설로 야기되는 반목과 증오를 잠재우려 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는 동양인을 폄훼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가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 일상의 얼굴이 되고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 낯설어졌으며 만나서 손을 잡고 인사하는 대신 주먹으로 반가움을 표하게 되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어 대인 관계가 단절되고 모임이 없어지니 사회생활이 축소되었으며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삶 자체가 피폐해져 갑니다. '타인의 눈이 지옥불'이 아니라 타인의 눈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불안감과 우울감이 불러온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가는 현상입니다. 이런 병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국가, 아니 전 세계를 휩쓰는 팬데믹(pandemic)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략)

 

  옆의 동료가 하루 아침에 거짓말같이 병들어 사망하는 불안하고 암담한 상황에서 문학과 문학인의 소임은 과연 무엇일까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페스트』의 등장인물들처럼 현실을 직시하며 각기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병마와 싸워 이기는 길이라면 문학과 문학인이 그 임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야만 하겠습니다.

  해답은 문학인이 할 인은 역시 문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건 사물의 진수를 바로보는 진정한 견자見者가 되고, 바로 생각하는 사색자가 되고, 바로 기록하는 증언인이 되고, 나아가 미래를 예견하는 예언자가 되는 것이 문학과 문학인의 소임이라는 끝말에 이르렀습니다.

  하면서 오래 전에 작고한 김관식(金冠植, 1934~1970) 시인을 떠올렸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37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김관식은 여러 가지 기행이 많은 시인이었습니다. 지인에게서 들은 그의 행적 한 가지를 영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생계가 어려워진 김 시인이 양을 기를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안양에 가서 양 한 마리를 구하였는데 시외버스가 있었지만 양을 사람과 함께 태워주지 않았기에 양에게 고삐를 매어 걸어서 서울까지 와야 하였습니다. 양을 끝고 한참동안 걸어오다 보니 너무나 지치고 다리가 아팠던 김 시인은 걸음을 멈추고 양에게

  "양아, 양아! 내 다리가 이리 아픈데 네 다리는 또 얼마나 아프겠니?" 라고 말하며 끌고 오던 양을 업고 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동화 같은 이 일화가 언제나 감동적인 이유는 시인의 삶에 깃들인 진정한 시정신과, 시정신의 실천에 대한 공감이며 존경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환란 속에서 창작되는 문학인의 문학이 이런 연민과 동정, 그리고 사랑에 뿌리를 둘 때 모든 고통은 위로를 받고 자칫 노출되려는 야만성과 이기심 따위의 부도덕성을 퇴치하여 불안과 공포,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병을 극복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코로나 사태 이후의 변화된 삶에 대처하는 마음 또한 더 단단해지리라는 믿음을 가집니다. ▩

   (p. 22-23 (중략)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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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22-2월(636)호<권두언> 에서

  * 허영자/ 시인, 한국문인협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