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나는 가령의 생에서 왔다/ 박지웅

검지 정숙자 2022. 4. 4. 03:08

 

    나는 가령의 생에서 왔다

 

    박지웅

 

 

  가령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가령의 외딴 별에 사는 외로운 양치기가 진흙으로 빚은 가령의 여인을 품어 시냇물 같은 딸아이를 얻었으니 이름을 가령이라 지었다 가령, 가령 부르면 둥글고 맑은 가령의 영혼에 잔물결 일고 부드러운 물소리가 났다 입천장을 가볍게 문지른 말이 입술에서 푸른 숲까지 밀려갔다 가끔 누군가의 꿈결을 타고 온 도화桃花가 가령의 물가에 닿거나 태워 날린 수의가 흰나비로 건너왔다 가령이라는 재가 가벼운 내력이 이러했다 이루지 못한 생은 가령의 하늘 아래 태어나 가령의 먼 훗날을 살아간다 다만 가령의 아름다운 나날은 후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가령과 가령과 가령과 양들은 가령의 생에서 태어났으므로 가령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나는 가령의 전생에서 쫓겨난 사내, 슬픈 날씨를 만나거나 외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당신이 아닌 곳을 걷다가 가령, 가령 읊조리면 우주 저편에 가령의 밤낮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엇갈려 태어나는 가령이라는 변방, 있거나 없거나 멀고 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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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파 MUNPA』 2022-봄(63)호 <시마당> 에서

  * 박지웅/ 2004년『시와사상』으로 등단 &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나비가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