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上禮雪
곽재구
사미야 강에 눈 온다
홀로 무릎 꿇고 눈보라 맞으며
무슨 생각하느냐
인간의 수와
별의 수
강변 모래알의 수를 다 더하면
슬픔의 수가 된다고 내게 말했지
눈은 펄펄 노래하며 춤추는구나
눈은 마을의 집들을 보리밥처럼 부풀게 하고
눈은 버려진 풀씨들의 이마에 입맞춤하고
눈은 작은 나룻배 위에 가득 쌓여
강물과 나룻배를 한 몸으로 만들고
눈은 시를 쓰다 얼어 죽은 노인의 오두막
봄이 오면 파랑새의 노래 가득하게 하고
눈은 아주 작고 부드러운 망치로
바위를 두드려 언젠가 모래를 만들지
사미야 강에 눈 온다
저 가슴 저미는 손 편지를 개봉하고도
여전히 슬픔의 수에 집착하느냐
무릎 꿇고 눈송이에 입 맞추며
너의 깊은 잠을 먼먼 나라로 보내렴
-전문-
▶ 공통어로 쓰는 시(발췌)_신진숙(문학평론가, 경희대 HK교수)
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예의를 갖추듯 타자를 지극히 대하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라고 하여도, 시는 그 자체를 소중한 것으로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어느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다른 누군가의 삶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 내리는 눈 또한 그러하다. 예사로이 지나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시 「강상예설江上禮雪」은 바로 이러한 시인이 지닌 타자의 윤리의식이 어떤 '지극함에 가닿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사미야의 강에 눈이 오는 풍경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누군가 홀로 그 눈 속에서 무릎을 꿇고 눈보라를 맞으며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수만큼 인생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별의 수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운 무수한 슬픔의 사연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슬픔을 헤아리고 분별하고 구분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슬픔은 언제나 슬픔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슬픔은 때로 우리가 타자를 돌아보고 보살피도록 만드는 역동적인 감정이다. 슬픔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그래서 또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시인이 발견했듯, 슬픔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로 한 '눈雪'이 하는 일을 보라.
사람의 마음도 이 눈과 같다. 부드러운 망치가 되어 세상의 무수한 장벽들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자신만의 완고함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슬픔이 온다고 하여 삶이 망가질 이유는 없다. 눈이 내리듯,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도록 노력한다면 슬픔은 세상에서 결코 파괴할 수 없는 '부드러운' 힘이 될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눈은 우리가 읽어야 할 누군가의 가슴 저미는 "손 편지"다.
'손 편지'는 누군가의 마음이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마음이다. 우리는 강이 눈의 속마음을 읽고 무릎 꿇고 눈송이에 입 맞추며 그들을 녹여내고 있는 깊은 밤을 알아야 한다. 그 깊은 잠 속에서 눈의 마음, 눈에 담긴 누군가의 슬픔을 먼먼 나라로 전송하는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먼 나라에서도 눈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린 세상은 한순간 우리를 같은 마음, 공통의 언어로 해석하도록 만든다. 이 슬픔의 공통성은 우리가 비록 잠시일지라도 타자와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 p. 시 90/ 론 105-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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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 MUNPA』2021-겨울(62)호 <이 계절의 초대시인/ 신작시/ 작품론> 에서
* 곽재구/ 1981년《중앙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시집『사평역에서』『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꽃으로 엮은 방패』외
* 신진숙/ 2005년『유심』으로 등단, 평론집『윤리적인 유혹, 아름다움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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