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알들의 소란/ 김혜천

검지 정숙자 2022. 4. 1. 00:51

 

    알들의 소란

 

    김혜천

 

 

  수면 아래 알들이 떠다닌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알과

  형태를 갖춘 알들이

  서로를 껴안고 뒹군다

 

  먹고 자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쓰고 싸우고 화해하는

  일상이 분화의 터전이다

 

  막막하기만 한 미지의 영역도

  한순간도 떠난 적 없는 매일매일이다

 

  물이 대지의 구석구석을 흐르면서

  사물을 일으키듯

 

  알은 몸의 각 기관을 흘러 다니면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새롭게 바뀐다

 

  순간에 멈추어 있지 않게 하는

  권력을 저항하게 하는

  고정된 이름에서 도망치게 한다

 

  끝없이 흐르고 끝없이 변화하여

  선명한 모형이 되는

  그리고 또다시 떠나는

     -전문-

 

  해설> 한 문장: 알은, 들뢰즈(G.Deleuze)의 용어를 빌면, 기관 없는 신체(body without organ)이다. 기관 없는 신체는 동일성의 유기체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고정된 상태를 거부하며 무한 변이와 생성의 운동을 한다. 그것은 미결정 상태에 있으면서 동시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존재이다. 알은 그 안에 수많은 주름을 가지고 있다. 주름과 주름이 만날 때, 다른 주름들이 생겨난다. 시인이 볼 때, 무한 생성의 이 "소란"은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일어난다. "일상이 분화의 터전이다"라는 말은 일상이 곧 알이라는 뜻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일상은 차이들의 무한 접속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일상 안에서 차이들은 "서로를 껴안고 뒹군다" 이렇게 차이들의 접속이 일어날 때마다, 알은 "새롭게 바뀐다." (p. 시 52-53/ 론 137)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학교 교수)

 

   -----------------

  * 시집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에서/ 2022. 3. 25. <시산맥사> 펴냄   

  * 김혜천/ 서울 출생, 201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란 꽃 하나가/ 문인귀  (0) 2022.04.03
거미줄 외 1편/ 김혜천  (0) 2022.04.01
밑줄 외 1편/ 황미현  (0) 2022.03.31
꽃 피는 주머니/ 황미현  (0) 2022.03.31
깨진 소주병을 바라보며 외 1편/ 허민  (0) 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