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밑줄 외 1편/ 황미현

검지 정숙자 2022. 3. 31. 01:59

 

    밑줄 외 1편

 

    황미현

 

 

  남의 것에 밑줄을 그으면

  내 것이 되는 것 같아 좋았다

  모르는 것도 아는 것이 되는 것 같아 좋았다

  저기, 맑은 하늘 아래 밑줄을 그으면

  산등성이가 되듯이

  거기 올라서서 너머를

  넘겨다보는 것이 좋았다

 

  옛날 우리 마을에는

  밑줄로 먹고사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인근 마을에 가서

  줄을 타는 아저씨와

  긴 밭을 가로질러 밑줄을 긋고

  그곳에 씨를 뿌리는 사람들과

  공중의 밑줄에 빨래를 널던 엄마들

 

  거미는 밑줄에 걸린 만찬을 즐기며

  장미는 밑줄을 타고 담쟁이를 넘고

  초승달은 밤마다 한쪽 눈에만 밑줄을 그린다

 

  나는 누군가의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수많은 밑줄을 그었지만

  그게 과연 내 것일까?

  그렇게 열심히 밑줄을 그었던 책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모두 밑줄의 덕분으로

  딱 그만큼의 높이와 울타리를 치고

  여기까지 아슬아슬 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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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수제비는 언제 나는가

 

 

  강기슭에서 서너 걸음

  그쯤엔 작고 납작한 돌들이 많다.

  납작한 돌은 멀리까지 가지 못하고

  찰랑찰랑 물 닿는 그쯤

  닳고 닳은 한 조각 물잎처럼 많다.

 

  나는 것으로 보아 문수제비는 조류의 한 종류다. 물을 딛고 물을 건너가는 가장 짧은 새

  빠른 새.

 

  강변에선 돌이 들뜰 때가 있다. 얇아져서 들썩이는, 날아갈 준비가 된 돌.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을 준비한 돌. 흐르는 물에 저의 몸을 갈고 또 갈아 딱 알맞은 크기가 될 때까지.

 

  다 자란 돌은 수면을 꿈꾸다 가끔 들썩이기도  한다.

  내려앉은 깊이보다 더 납작하게 날아가려는 새

  수면과 물속은 너무 가깝고도 멀다.

  강기슭의 물과 물 사이에서

  단 한 번의 호흡으로 날아오를 돌이

  납작한 신호음을 기다리는 중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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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이렇게 가벼운 주머니』에서/ 2022. 2. 28. <시작> 펴냄   

  * 황미현/ 서울 출생, 2019년 『시작』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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