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푸른 별, 나의 물독 외 1편/ 정영숙

검지 정숙자 2022. 3. 29. 01:42

    푸른 별, 나의 물독 외 1편

 

    정영숙

 

 

  잉카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지상에 옮겨놓는다 오늘밤 내 별자리를 내가 디딘 발밑에서 본다 물독에 철철 흘러넘치는 따듯한 물들을 본다 물독 밑바닥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던 태생이 슬픔인 눈물, 어디에 스며들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피멍 든 굳은살 박인 발 씻으며 눈 밝은 물이 말갛게 넘쳐흐른다 내 곁을 맴돌며 언 지푸라기로 물독을 닦아주며 평생 내 물바가지에 푸른 나뭇잎 띄워주던 어여쁜 새 한 마리, 내 머리 위를 날고 있다

 

  발자국 잘못 디딜까 잠시도 눈 붙이지 못하고 하늘에 떠 있는 저 푸른 별,

  나의 어머니

      -전문-

 

    -----------------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 여름 옥상에서 나누던 나의 키스를

  누가 훔쳐갔을까요

 

  안전장치도 없던 카사블랑카의 어둔 골목길

  지뢰가 묻힌 줄도 모르고 팔짱 끼고 활보하던 시절

  우리의 곧은 등 뒤에는 대낮에도 석류알처럼 붉게 쏟아지던

  별무리, 든든한 백이 있었지요

 

  한 호흡 한 호흡마다 부딪치던 입술이

  누군가 던진 수류탄에 맞아 사하라 사막을 뒹굴어도

  하얀 모래 위에 누워 천연히 바라보던 은하수는

  우리의 안전한 보금자리, 하얀 집이었으니

  두려울 게 없었지요

 

  내일의 사구沙丘 방향도 모르면서

  지구 반대편으로 눈 감은 채 걸어갔던가요

 

  해와 모래가 맞닿던 불꽃의 사하라

  사막이 강이 되고 강이 사막이 되는 몇 겁, 긴긴 눈물과

  모래바람으로 품을 더 넓힌 붉은 사하라에는

  꿈 같은 여름밤이 깃발을 달고 은하를 건너가고 있네요

 

  그 깃발 따라

  별빛 쏟아지는 하얀 집

  카사블랑카에 다시 도착하는 날

  우리는 또다시 지난날을, 새날을 살게 되겠지요

      -전문-

 

   -----------------

  * 시집 『나의 키스를 누가 훔쳐 갔을까』에서/ 2022. 2. 28. <문학의전당> 펴냄   

  * 정영숙/ 1947년 경북 대구 출생, 1993년 작품 활동 시작, 시집『옹딘느의 집』『물속의 사원』『지상의 한 잎 사랑』『숲은 그대를 부르리』등, 활판시선집『아무르, 완전한 사랑』, 산문집『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 읽기』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진 소주병을 바라보며 외 1편/ 허민  (0) 2022.03.30
밤의 서가에서/ 허민  (0) 2022.03.30
함제미인/ 정영숙  (0) 2022.03.29
수요일 외 1편/ 최문자  (0) 2022.03.27
몇 개의 발화/ 최문자  (0) 202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