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발화
최문자
토마토가 익는 동안
누가 나를 보았다고 한다
7년 전
토마토는 몇 번
나는 한 번 더 익었다
익다가 죽기도 하는구나
몇 개 죽고 나서
나는 몇 개로 보일까?
내 몸에 몇 개의 점이 더 생겼고
이후로도 컴컴할 몇 개의 방이 비어 있고
몇 개의 주머니에 비누 거품 같은 결심
늘 견디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오는 굽은 못 몇 개를 본 사람들이 있다
몇 개의 내 못들은 모두 나선형
위로 오를수록 어깨 너머로 꽃잎이 없어지고 결심 몇 개 따라가 죽고
토마토가 익는 동안
다른 토마토가 열리지 않는 동안
연필 몇 개 하얗게 깎아 주고 있다
토마토가 익는 사이로
얼마만큼씩 빛은 없어지는 걸까
여름은 이미
다른 곳에서 어떤 생을 사랑하고 있다
누가 나에게서
익지 못하는
푸른 토마토 몇 개 보았다고 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의 핵심적 사건으로 '죽음'을 제시한다. '죽음'은 이번 시집 전체에서 주조를 이루는 중심 사건인데, 그 내적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3연의 "익다가 죽기도 하는구나"라는 문장을 주목해야 한다. 최문자 시에서 '죽음'은 '생명의 소멸'이라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의미가 아니라 '숙성의 누적 과정'으로서 '농축의 결과'라는 내밀한 의미를 가진다. 2연에서 "토마토는 몇 번/ 나는 한 번 더 익었다"라는 문장은 숙성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되는 사건이고 그 누적 과정에서 농축되면서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화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익다가 죽기도 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것이 작품에 표면화되지 않았지만 '슬픔과 고통'이라고 해석하고자 한다. 결국 이 시의 전반부는 슬픔과 고통이 숙성되고 누적되는 과정에서 농축되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진술하는데, 이 과정 전체가 최문자 시인이 지향하는 '사랑'의 정체이자 본질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p. 시 13-14/ 론 146-147) (오형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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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에서/ 2022. 3. 4. <민음사> 펴냄
* 최문자/ 1943년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나무 고아원』『파의 목소리』『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등, 산문집『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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