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수요일 외 1편/ 최문자

검지 정숙자 2022. 3. 27. 02:23

 

    수요일 외 1편

 

    최문자

 

 

  수요일엔 슬픈 사람들이 온다

  물결도 파문도 없는 이곳으로 온다

 

  스웨터를 짜러 털실을 들고 온다

  코바늘이 끝없이 끌어들이는 털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밤새 앞니를 갈다가

  떠올리게 되고

  울게 되고

  긴 줄 맨 끝에서

  재를 휘날리며

  없어진 한 사람

 

  스웨터를 짜다가

  울컥 울음을 터뜨린다

 

  코바늘이 삼켜지지 않는 울음이다

 

  수요일 모임이 길어진다

  견디기 어려울 때까지 스웨터를 짠다

 

  뜨고 남은 털실 뒤에 놓여 있는 슬픈 재

  벌써 수요일이 사라지려 한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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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오래된 아버지의 괘종시계 아래서

 

  그때 그때의 말을 사과하며

  소리가 나지 않게 신발을 벗고

  왈칵 쏟아지는

  기억 몇 때문에

  시간은 검은 콩처럼 익었다

 

  아버지와 나

  둘만 있어도

  아버지라는

  그 슬픔 내가 알아

  열 가지 이상의 슬픔이 섞여 있지

  그 슬픔 곁에 누웠다 온 이야기 쓰려고 불을 켰었죠

 

  아버지는 커다란 해바라기 꽃을 좋아했다

  아버지의 해바라기를 달고

 

  꽃이 커요

  너무 커요

 

  소리쳤지만

  아버지가 늘어진 실을 당기면

  내 단추들은 톡톡톡 여러 번 떨어졌다

 

  그때

  부대끼다 못한 누군가들은 무더기로 해바라기가 되고 있었는데

 

  나는 채송화 씨를 뿌리고

  그 씨가 꽃을 달고

  사표를 내고 집으로 오면서 아버지와 해바라기를 의심했지

 

  아버지 옆에 채송화, 채송화 옆에 채송화를 놓았다

  채송화를 지나면 또 채송화 계속 채송화만 쏟아져 나올 때 채송화의 실패가 거듭될 때 채송화가

  영영 죽지 못할 때

  아버지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죽음은 단추도 채우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해

  죽은 해바라기 옆에 채송화를 심고 히말라야로 갔지

 

  우리는 어디까지 갔다 흘러오는 한 몸인가

 

  새학기가 시작되고

  오래된 아버지의 괘종시계는 누군가 정해 놓은 시간을 매번 알렸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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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에서/ 2022. 3. 4. <민음사> 펴냄   

  * 최문자/ 1943년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파의 목소리』『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등, 산문집『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