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수변공원/ 설하한

검지 정숙자 2022. 3. 26. 02:33

 

    수변공원

 

    설하한

 

 

  봄이 와서 우리는

  수변공원 주변을 걸었다

 

  걷다가 네가 멈춰 서서 말했다

  앵두나무 아래에 놓인 의자에서 한 할머니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고

  그런데 애초에 의자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잘못 보았을 거라고 나는 말했다

  너는 눈을 비비고 고개를 갸웃거렸고

  우리는 잠시 그곳에 서서 의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걸었다

 

  만개한 꽃들로 공원은 아름다웠고

  공원 주변엔 낡고 오래된 살림집을 개조한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다

  카페 앞 테라스에선 젊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케이크를 먹거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수변공원 주변 일대는 곧 재개발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걸으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공감하면서 그리고 충분히 슬퍼하면서

 

  우리는 수변공원 주변 골목을 걸으며 곧 사라질 동네를 구경했다

  동네에는 낡은 연립빌라가 많았고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골목을 피사체로 삼거나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돌과 나무로  된 주택을 보았다

  주택의 창문에는 고풍스러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우리는 정말 앤틱한 집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골목을 빠져나가며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들이 지갑을 주워주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며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변공원이 있는 동네에서 보았던 것들에 대해

  지갑을 주워준 선량한 사람들에 대해

 

  --------------

  *『시사사』 2021-여름(106)호 <이 계절의 신작시 2>에서

  * 설하한/ 2019년 ⟪한국경제⟫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