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괴
장이지
껴안고 있는 엽서의 앞면과 뒷면처럼 마지막 잎새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는 두렵다 이 밤이 지나면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겠지 배달된 엽서는 모든 것을 말해 버리겠지 나는 바람벽의 깊은 곳에 마지막 잎새를 묻는다 바람이 분다 바람벽을 접는다 그 안에 잎새가 있다 더 큰 바람이 들이치고 벽은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할까 나는 지친 몸으로 벽 깊숙한 곳에서 마지막 잎새를 꺼내 마른 손에 담는다 마른 손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접어 밀랍으로 봉한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바라지 않는 것) 엽서는 왼손과 오른손의 사슬 같은 악수를 풀지 않고 공중제비의 명멸을 되풀이한다 사자후 속으로 나는 간다 결괴 속으로 나는 간다 엽서는 귀청이 찢어지는 바람의 일갈 속에서 선회한다 금빛 갈기 속의 말은 앙다문 밀랍의 입술을 벌린다 엽서는 모든 것을 말하려 하지만······ 접힌 자국이 없는 바람의 봉투가 찢어진 손을 감싼다 사자후의 봉투, 결괴는 결괴의 형식으로 결괴를 미룬다 외톨이 농아가 골목의 끝을 민다 골목의 끝은 언제까지 지친 몸으로 서 있어야 할까
--------------
* 『시사사』 2021-여름(106)호 <시사사 포커스 1/ 자선 대표시>에서
* 장이지/ 시인, 2000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안국동울음상점』『연꽃의 입술』『리플란드 우체국』『레몬옐로』『해저의 교실에서 소년은 흰 달을 본다』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변공원/ 설하한 (0) | 2022.03.26 |
|---|---|
| 양몰이 개/ 김복희 (0) | 2022.03.26 |
| 김동진_여기로 오는 나무늘보(발췌)/ 구의역▼ : 주창윤 (0) | 2022.03.23 |
| 신동옥_시간을 베끼는 필경사...(발췌)/ 변두리 연대기 : 채상우 (0) | 2022.03.23 |
| 김언_내가 모르는 내 얼굴이...(발췌)/ 청소하는 사람의 세 질문 : 이현승 (0) | 2022.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