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동진_여기로 오는 나무늘보(발췌)/ 구의역▼ : 주창윤

검지 정숙자 2022. 3. 23. 16:48

 

    구의역

 

    주창윤

 

 

  구의역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잠깐 졸다가 눈을 떴다.

 

  다족류 왕지네가 저편에서 재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세차게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들은 모두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섰다.

  두 개의 더듬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첫마디 발톱에서 독샘을 뿜어내는

  왕지네는 누군가의 몸을 갉아 먹고 있었다.

  때때로 어린 지네 새끼들은

  하수구와 하수구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이의 복부와 옆구리에서

  자라나기도 했다.

  한순간이었다.

  지하철 의자에서 잠깐 조는 사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모두들 한두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 있는 스크린 도어 앞

  떨어진 백팩에서 흘러나온 사과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전문-

 

  여기로 오는 나무늘보(발췌)_ 김동진/ 문학평론가

  시에서 "왕지네"는 "몸을 갉아 먹"는 생물이다. "지네 새끼들" 역시 "어떤 이의 복부와 옆구리"를 갉아먹고 자란다. 시인에게 지하철은 사람의 몸을 갉아먹는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세상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언뜻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비유이겠지만, 현대 도시에 살면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공감이 가는 비유일 것이다. 통근이나 통학을 위해 일상적으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피로한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존 때문이다. 교통체증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지하철은 출퇴근 수단으로 애용된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피로를 유발하는 장소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우겨넣는다. 화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두 개의 더듬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첫마디 발톱에서 독샘을 뿜어내는/ 왕지네"로 보는 것은, 피로한 자신의 몸을 이동시키러 오는 지하철이 혐오스럽고 위협적으로 느껴진 탓이다.

  을까? (p. 시 175/ 론 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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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2-2월(386)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_주창윤/ 근작시 & 작품론>에서

  * 주창윤/  1986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물 위를 걷는 자 물 밑을 걷는 자』『옷걸이에 걸린 羊』『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 김동진/ 2020년 ⟪조선일보⟫ 평론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