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양몰이 개/ 김복희

검지 정숙자 2022. 3. 26. 02:16

 

    양몰이 개

 

    김복희

 

 

  그냥 달렸지 앞에 양들이 있고 뒤에 내가 있고 그냥 달렸어 초원의 향기 부드러운 바람 그런 것 모르고 그런 게 좋은 것인 줄 모르고 좋았겠지만 좋다는 의식 없이 달렸지 귀가 펄럭이고 그대로 쓰러져도 될 것을 한참 그렇게 달리다 알았어 내가 달리고 있다는 것을

 

  하늘은 정말 높을까

  낮게 느껴지더라도 바다보다는 높고 나보다 높은 산보다 구름보다 안개보다

  높으니까 높을까

  궁창이라는 말은 왜 무섭고

  주저앉은 지붕처럼 여겨질까

  하늘 높이만큼 뛰어 오르면

  길게 낮게 쓰러지겠지

  멀리 볼 수 있겠지

  내가 쓰러진 곳을 따라

  풀이 많이 나겠지

  멈추는 것과 같을까

 

  산과 바위여, 위로 위로 무너져라. 그리고 어린 양의 분노에서 우리를 숨겨다오*

  알 수 없는 높이에서 거꾸러지는 인간

  곁에

  함께

  엎드릴까 말까

  멈추는 것처럼 보일까

  나는 쓰러진 인간

  나를 몰고 가는 휘파람을 알아채야지

  그 날카로움에 베여

  백만 번 천만 번

  나는 달렸지 뜻은 모르지만 외우고 마는 노래처럼

  노래가

  내 괴로움이라고 해도

  눈 닿는 빛을 뒤로 보내며 나는 달렸지

  내가 쓰러진 곳에는

  양도 없고 목소리도 없고

  하늘도 없었지

     -전문-

 

   *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의 '훈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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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 2021-여름(106)호 <이 계절의 신작시 2>에서

  * 김복희/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