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연대기
채상우
언제나 나는 변두리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예전 외사촌 동생은 끊임없이 서울에 대해
묻는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다 한 십팔 년쯤
초등학교 육학년 때 낮은 포복으로 기어오르던
삼양동 달동네를 서울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무기정학 당한 미아리고개를 보여주기엔
아직 어렸다
팔팔올림픽이 이루어 놓은 팔팔한 천호동 뒷골목은
구겨진 습자지에 적어 내린 연서
보이지 않는 공포로 우리를 엄습하던
군화 아래 서울은
잘도 도망다녔다 종로에 서면 을지로로
을지로에 서면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때론 왕십리에서 헛다리짚기도 했다
그사이 두어쪽 넘기다 만 시집 속으로
애인은 걸어들어갔고 다시 읽어야 할 시간이
완전무장으로부터 무장해제까지 삼 년을
기다렸다 기다림 끝엔
저 먼 사막의 요술거인이
분노와 슬픔과 참회와 타협을
석 달 치 제조해 주었고 서울은 역시
잠복할 만한 장소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
雨水에 눈이 처연스레 내리는
서른, 내가 설 수 있는 곳은
변두리밖에 없음을 외사촌 동생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이 지루한 리얼리즘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 전문(등단작 가운데 한 편), 『멜랑콜리』
▶ 시간을 베끼는 필경사, 시인 채상우(발췌)_ 신동옥/ 시인
처음 인사를 나눈 것이 2003년 겨울 충무로였나? 물경 20년인데, 적당한 거리에서 응원하듯 지내 온 듯하다. 약속을 하고 만난 것도 손에 꼽을 정도인 듯하고 말이다. 놓여나지 않고 삶의 반경 안에서 지켜보아 온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점 때문에 낙점되었나 보다. 정작 형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분들은 따로 있다. 함께 문청 시절을, 대학 시절을 보낸 친우들, 시집 해설을 품앗이한 동료들이 그런 분들이다. 우선 형이 내놓은 시집과 산문들을 읽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삶의 이력들이야 따로 약속을 잡아서 묻기로 했으나 접었다. 유년 시절에 대해서, 군 시절에 대해서, 끔찍하게 기억된다던 중학교 시절에 대해서, 그리고 형이 잠시 미루어둔 공부에 대해서, 가정과 직장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채상우 형에 대해서만 생각하자고 다짐하며 글을 썼다. 치통을 참아가며 한나절, 젊은 시절의 채상우 사진을 보고 앉았으려니 문득 '형은 시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싶다.
(·······)
어쩌면 먼 훗날의 자신에게 「변두리 연대기」는 '이성복의 남해금산', '황지우의 인광의 바다', '유하의 하나대'가 뭉뚱그려진 형상으로 읽힐 거다. 이 희유한 작품은 『멜랑콜리』 후반부에 실린 몇 편의 작품들로 보충된다. '무른 손톱에 옥도정기를 바르던 외할머니(「얼레지」) '아스라한 데 시선을 놓아두고 전생과 내통하듯, 턱을 괴고 앉은 여자'(「玉水洞 여자」) '(아마도) 미아사거리 던킨도너츠 뒷길에 앉아 종일 마늘을 까던 엄마'(「마늘까는 여자」)의 세계가 그것이다. 세계와 살, 그 자체만큼만 거리를 두고 세계를 걸머지는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통찰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p. 시 165/ 론 162-163 (·······)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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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2월(386)호 <커버스토리_채상우>에서
* 채상우/ 2008년『시작』으로 등단, 시집『멜랑콜리』『리튬』『필』
* 신동옥/ 2001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고래가 되는 꿈』『밤이 계속될 거야』『달나라의 장난 리부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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