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학교야, 안녕
유병만
뻐끔뻐끔 노을을 받아먹어도 미꾸라지인 내 몸에는
금빛 비늘이 돋지 않아요, 엄마
그런데도 왜
금붕어 동상이 서 있는 어항 속 학교에 다녀야 하나요?
강물을 헤엄치며 1미터 넘게 자라는 코이(Koi) 잉어는
작은 어항 안에 갇히면 평생 2센티미터만 큰다는데
학원 앞에서 기다렸다가 노을을 먹이는
날씬한 엄마, 꿈속에 들어와 아귀가 되는 금붕어 선생님들을
영영, 여기
풀숲 웅덩이에서 잊을 거예요, 온몸으로 흙탕물을 일으켜
참붕어 소금쟁이 방게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렸어요
맑고 거친 물살을 헤엄쳐 오르며
내 노래와 꿈을 내 지느러미로 고를게요 엄마
금붕어 학교 선생님은 반딧불이
늘 금붕어가 정답인 숙제들아 안녕, 안녕
-전문-
해설> 한 문장: 어린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교육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어린이는 현실계의 타자나 다름없다. 때문에 "뻐끔뻐끔 노을을 받아먹어도 미꾸라지인 내 몸에는/ 금빛 비늘이 돋지 않아요, 엄마/ 그런데도/ 금붕어 동상이 서 있는 어항 속 학교에 다녀야 하나요?"라고, 미꾸라지 어린이가 엄마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 타자의 존재성이 부상한다. 자율권을 행사할 수 없는 어린이들은 학교 또한 어른들이 선택해준 데를 가야만 하듯 금붕어 학교에 다녀야 하는 미꾸라지의 항의가 타자로서의 그것을 가름한다.
"온몸으로 흙탕물을 일으켜/ 참붕어 소금쟁이 방게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렸어요/ 밝고 거친 물살을 헤엄쳐 오르며/ 내 노래와 꿈을 내 지느러미로 고를게요"처럼 자신이 누구임을 당당히 알리면서 자아를 자각할 때 현실의 지평에 참여하게 되고 주체로 탈바꿈하는 현실의 지평에 참여하게 되고 주체로 탈바꿈하는 노정에 이르리라. 금붕어는 금붕어답게, 잉어는 잉어답게, 미꾸라지는 미꾸라지답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그들만의 원리대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풍자가 현실의 지평을 은유한다. 물고기 세계에서 "늘 금붕어가 정답"일 수는 없다. 정답은 여러 개다. 잉어도 미꾸라지도 금붕어도 자연 만물은 각각이 각각의 정답을 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러하지 못한 현실을 미꾸라지 시선으로 풍자함으로써 유병만은 시의 지평을 새롭게 열고 있다. 사물의 의인화는 만물을 통합하는 동심의 세계와 일체인 것이다. (p. 시 58/ 론 122-123) (진순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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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금붕어 학교 선생님은 반딧불이』에서/ 2022. 3. 14. <문학의전당> 펴냄
* 유병만/ 1982년⟪주간중앙⟫으로 등단 소설 부문 등단, 2009년⟪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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