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자
이원로
땅에서 하늘에서
안에서 밖에서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경기자들이 눈독 들인다
놓치지 않으려
무언갈 잡아채려
마음과 혼을 모은다
태세를 갖춘다
우리는 모두 경기자
신호를 기다린다
시작처럼 할 경기일까
마무리처럼 할 경기일까
-전문-
해설> 한 문장: 일찍이 우리 시 동네에서는 난해성 시비가 일었다. 지난 20세기 중엽 무렵인 1960~70년대쯤의 일이다. 시의 과도한 의장意匠 탓에 여느 독자들이 텍스트의 담론을 독해할 수 없다는 논란이 그것이다. 주로 김수영 시인에 의해서였다. 그는 '난해의 장막'에 그 무렵 일련의 시들이 둘러싸여 있다고 질타했다. 그가 말한 저 과도한 시적 의장이란 다름 아닌 이런 것. 당시 일군의 내면 심리 추구의 시인들이 내건 시적 실험이 그것이었다. 전위적인 그 실험은 기존의 시 문법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런 부류의 시적 수사나 의장은 여느 독자들이 새해하기 어려웠던 것. 지금 돌이켜보면 이는 새로움에 대한 맹목적인 함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이원로 시인의 시들은 앞서 말한 대로 짧으면서도 잘 읽힌다. 내가 굳이 지난 한 시절 시 동네 얘기를 소환한 것도 바로 이 시인의 시가 보이는 이 같은 특장特長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시가 보여주는 단문 문장을 통한 가독성可讀性을 주목해서인 것이다. 그러면 이 특장은 어떤 시사적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인가. 시인 김수영의 어법 대로 하자면 난해의 장막을 완전 걷어 제친 것이다. 이는 시를 여느 독자들에게 돌려준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터이다. 더 나아가 시의 유통과 소비를 원활케 했는가 하면 오늘날과 같은 풍요로운 시의 시대를 여는 데 곧바로 기여寄與한 것이기도 하다. 결과론이지만 이렇듯 시의 담당층을 크게 확충한 데에는 저러한 가독성의 제고提高가 그 저변에 있었던 셈이다. (p. 시 57/ 론 103-102) (홍신선/ 시인, 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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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찻잔과 바다』에서/ 2022. 2. 15. <조선문학사> 펴냄
* 이원로/ 1989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기적은 어디에나』『청진기와 망원경』외 다수, 심장전문의, 인제대학교 총장(5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종신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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