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적도/ 휘민

검지 정숙자 2022. 3. 15. 01:37

 

    적도

 

    휘민

 

 

  어젯밤에 배는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들어섰다 해수면에 고여 있던 미열이 어둠 속에서 이마를 짚으며 다가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갑판에 나와 바람을 기다렸다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다가 두고 온 얼굴과 쓰다 만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당신과 나는 서로의 반대편에 머물 뿐 가까워지지 않는다 점이지대를 추가하면 지도가 바뀔 수 있을까 물결 위에 떨어뜨린 한숨으로 본초자오선을 흔드는 상상을 해본다 아주 가끔 물속에서 눈동자가 붉은 열대어들이 튀어 올랐으나 바다는 점잠하다 불안은 미래의 편이어서 나는,

 

  다만 오지 않은 내일을 기다릴 뿐이다 날짜변경선에 발이 묶여 있으니 달력은 보지 않기로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어지러운 마음들이 뒤엉켜 적란운이 일어난다 비를 머금은 저 구름의 방위는 하늘보다 당신과 가깝다

 

  그사이 배는 동경으로 더 기울어진다 항해사에게 물으니 기니만을 지나고 있다고 한다

        계간 『문파』 2021-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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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파 MUNPA』 2021-가을(61)호 <EDITOR'S PICK> 에서

  * 휘민/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 2011년 ⟪한국일보⟫ 동화 당선, 시집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동화집 『할머니는 축구 선수』, 그림책 『빨간 모자의 숲』 『라 벨라 치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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