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하염없이/ 정선희

검지 정숙자 2022. 3. 13. 19:33

 

    하염없이

 

    정선희

 

 

  달항아리 옆에서 나도 부풀어 올랐다

 

  비어 있어야

  완성이 되는 그릇

 

  매끈하지 않아서

  거칠거칠해서 마음 붙일 데가 있다

 

  보름달 속에 아직 부서지지 않은 내가 있었다

  금이 간 부분이 감쪽같이 붙어 있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들숨으로 공기를 가득 채운

  둥근 것은 불안하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상처라고 생각하면 상처가 아니다

  상처의 목록을 불러줄 때마다 빙하가 녹는다

 

  구석에 가만히 있는 것으로

  구석을 완성하는 둥근

  저 하염없음

 

  나의 하루 종일을 하염없이 만들고  있다

 

  하염없이, 란 말이

  딱 어울리는 달항아리

 

  그는 충분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내 곁에

  그렇게 있어주는 것만으로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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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1-겨울(39)호 <미래시학 시단 >에서

   * 정선희/ 경남 진주 출생, 2012년 『문학과의식』으로 &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푸른 빛이 걸어왔다』『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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