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오대혁_에스컬레이터에는 유토피아가 있다(발췌)/ 소신의 족보 : 노명연

검지 정숙자 2022. 3. 11. 01:07

    소신의 족보(所信 族譜)

 

    노명연

 

 

  3통1반에서 하차하는 신도시 지하철역

  쉬고 있던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시작한다

 

  언제 봐도 절제된 미소와

  적당한 거리감으로 반기되

  멀어져가는 나를 그는 그리워하지 않는다

 

  답답하여 타지 않고 외면해도

  성큼성큼 덧걸어 타며 무시해도

  힘들면 언제든 타고 가라며

  휘둘리지 않고 한결같은 속도로 살아가는

  그의 깊은 생각을 가늠해본다

 

  지금

  우직하게 올라가는 그 에스컬레이터에

  소롯이 나를 얹어 찬찬히 올라가며

  미더운 그를 배우고 있다

    -전문-

 

  에스컬레이터에는 유터피아가 있다_노명연의 시세계(발췌)_ 오대혁/ 시인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와 다르다. 엘리베이터가 이질적 층들 사이의 수직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면, 에스컬레이터는 이동하는 계단의 형식을 취하며 이질적 층들 사이의 수평 이동을 가능하도록 한다. 렘 콜하스는 에스컬레이터를 근현대 기술의 발명품이며 급진적 건축요소로 "백화점 등의 새로운 건축적 유형(typology)을 가능케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그가 '정크스페이스(Junkspace)" 라고 일컫는 실내공간의 도시화(urbanization) 경향을 위한 필요조건을 제공"3)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시화'를 상징하는 에스컬레이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인은 그 물성의 반인간성, 그리워하지 않음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지금/ 우직하게 올라가는 그 에스컬레이터에/ 소롯이 나를 얹어 찬찬히 올라가며/ 미더운 그를 배우고 있다" 라고 말한다. 물성에서 미더운 측면을 읽어낸다. 누군가를 얹어 찬찬히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의 미덕. 시인은 과연 그 미덕을 긍정하고 있는 것일까? 편리함에 길들여진 몸. 타인을 올리지도 못하고 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물성의 의미화를 시도한다. (p. 시 24/ 평 28-29)

 

  3) 주하나, 이동훈. 「건축요소로서의 에스컬레이터에 관한 렘 콜하스의 이론과 그 적용분석」, 『2018년 대한건축학회 춘계학술발표대화논문집』, 제38권 제1호(통권 제69집), 2018. 4. 26~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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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1-가을(38)호 <책 속의 작은 시집/ 시평>에서

   * 노명연/ 2019년『미래시학』으로 시 부문 & 2020년『미래시학』으로 수필 부문 등단, 저서『詩의 끈을 풀다』등

   * 오대혁/ 제주 출생, 2005『신문예』로 시 부문 등단, 저서『원효설화의 미학』『금오신화와 한국소설의 기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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