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오달만/ 손택수

검지 정숙자 2022. 3. 10. 02:13

 

    오달만

 

    손택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논을 아버지는

  물방실이라고 불렀다

  논에 물이 들어오면 논이 방실방실 웃는다고

  그걸 보는 사람도 흐뭇하게 방실이가 되고 만다고

  물방실이를 이야기할 때는

  물방개가 그리는 파문 같은 것이 입가를 맴돈다

  한번은 아버지의 노름이 들통 나서

  갓 젖을 뗀 나를 업고 큰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저녁나절 모를 흔들고 가는 바람처럼 이쁜 게 있간디

  아무리 엄하신 할아버지라고 별 수 있간

  그 논흙을 떠와 집벽을 바르고

  대나무 뼈에 발라 지붕에 얹기도 했던

  아버지는 물방실이 앞에서 딱 한 번 운 적이 있다

  속 모르고 방실거리는 물방실이를 판 날이었다

  모내기하던 날 발바닥 오목한 데 찰싹 달라붙던

  찰진 흙가슴팍을 다시 어디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국이나 도나 군이나 면이나 리 같은

  행정 단위의 지명들에선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실감

  그런 땅은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의 땅이 아닌 물방실이에 관해 듣다보면

  난민도 아닌 내가 왜 난민인 줄 알겠다

  내란과 외침을 경험하지 못한 내가

  북간도로 블라디보스톡으로 사할린으로

  유랑하던 사람들처럼 떠돌고 있는 줄 알겠다

     -전문-

 

   *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자유인을 '오달만(odalmann)"이라고 했다. 오달만은 토지를 몰수당하거나 매각해도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있다. 화가의 작품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그 제작자는 그대로인 것처럼 오달만은 근대의 소유권 개념이 닿지 않는 장소의 창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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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아돌하』 2021-겨울(61)호 <신작시> 에서

   * 손택수/ 전남 담양 출생, 1998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붉은 빛이 여전합니까』『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