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미니멀한 내면 외 2편/ 김자흔

검지 정숙자 2022. 3. 10. 23:58

 

    미니멀한 내면 외 2편

 

    김자흔

 

 

  내면에 문제야 있든 없든

  네가 본다고 믿었던 것은 외면의 풍경

 

  그늘이 앉았다 가는 젖은 숲과 젖은 숲 같은 것

 

  어떻게 더 가야 하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솔직한 표현을 지적인 체념의 태도로 말할 때

  내면은 날개 돋친 단어로

  미니멀하다

 

  단어 조합이야 이치에 맞든 안 맞든

  

  흘러내린 고무줄은

  다시 허리춤으로 올려 느슨한 부분에서

  야무져 줘야지

 

  그깟 놈의 살도

  전부 내다버려 줘야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

  

  세상을 털어내고 의심을 털어내고 책무를 털어내고

 

  그리고 손을 씻지, 하나 둘 셋

  서른까지 세면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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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졌다 일어선 봄

 

 

  조금 알았다

 

  한때 명랑했던 생명

 

  여기

  반만 묻혀 있는 한 마리 노랑 고양이

  죽어서야 제 몸 만지기를 허락했던

  고양이는

  외로워서 죽은 세계가

  하도 외로워서

 

  도로 사람 사는 마을로 찾아와

  늙은 소나무 아래 두 손 두 발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다시 한 번 봐달라고

  환한 봄날 걸쳐진 소나무 언덕에 반쯤 묻힌 제 몸 보이며

  조용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고양이별에 문제가 발생하여 무지개다리 건너는 프로그램이 잠시 중지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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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염없이 낮잠

 

 

  고양인 주인 얼굴 따윈 곧바로 잊어버리지

  그것이 고양이의 장점이라면 장점,

 

  그렇다고 대충 아무거나 붙여둬선 안 되겠지만

 

  사실 고양이는 식빵을 구우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지

 

  오늘은 오수를 되감는 시간,

 

  나도 모르게 어느새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잠이 들지

  그러니 날 좀 내버려두지 그래

 

  우린 할 일 없어 졸고 있는 게 아니거든

 

  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것은

  나중 생각 따윈 바닥에 내려놓기로 한다는 거야

 

  이봐 우리 이만 뒤돌아 달려 나갈까

  말까

 

  가만 있어봐 이러다 정들고 말겠어

 

  날도 더우니 새털보다 좀 더 날래보자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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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하염없이 낮잠』에서/ 2022. 2. 22. <문학의전당> 펴냄   

  * 김자흔/ 충남 공주 출생, 2004년『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고장난 꿈』『이를테면 아주 경쾌하게』『피어라 모든 사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