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땅속에는 뼈들이 산다 외 1편/ 이영란(李姈蘭)

검지 정숙자 2022. 3. 4. 00:23

 

    땅속에는 뼈들이 산다 외 1편

 

    이영란李姈蘭

 

 

  땅속에는 뼈들이 있다

  절그럭거리는 나무들을 밀어 올리며 중력을 실천한다

 

  나무들은 배운 대로 실천한다

 

  한 몸에서 부딪치고 부러지곤 하던 뼈들이 탈골하는 과정을 뿌리로 더듬으며 배운다 나뭇가지들은 기이한 형태로 뻗어나가고 이파리를 떨어뜨리며 새를 빌려 영혼을 자처하는 나무들

 

  뼈들이 삭는 시간 동안 뿌리들도 오랫동안 학습해왔다 시냇물이 자작하게 스며드는 소리, 바위가 모래로 바뀌어가는 시간 동안 체득하는 방식과 리듬을 배운다

 

  제각각으로 서 있어야 하는 것은 그들만의 질서다

 

  비탈을 묵묵히 견디는 나무들, 쉬지 않는 침엽수들도 여전히 죽은 사람을 실천 중이다 처지를 비관하는 것은 사람들만의 잘못된 특기이므로 나무들은 비틀린 기형으로 잘 견딘다

 

  내가 아는 몇몇의 뼈들도 땅속을 실천 중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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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와의 귀면을 쓰고 오는 날들

 

 

  기슭에서 출발한 수영은

  반드시 기슭을 잡는다

  어제는 두 곳의 장례식과

  한 개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모두 반복했고 닮은 꼴이었다

 

  닮지 않은 날이

  기쁜 날이었다

 

  나날이 건너다니는 징검다리는

  첫돌과 마지막 돌이 감쪽같이 닮았지만

  우리는 젊을 때 가졌던 결의와 다짐을

  어디선가 물에 빠뜨려 잃어버렸다

  그때 잃어버린 계율이 떠오르고

  일정한 몇 개의 패턴들처럼 물은 흘러간다

 

  어제와 내일은 얼굴도 없이

  슬그머니 도둑같이 다녀가지만

  혹은 망와의 귀면을 쓰고 오는 날들은

  영락없이 사고 여객기처럼 길게 연기를 날리며

  불온한 기억의 숲 너머로 사라지곤 한다

 

  제일 많이 닮은 것은

  맑은 날의 하늘과 흐린 날의 지붕들

  닮은꼴로 나는 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반복을 위해

  남자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닮은 날들이 나를 지우고 갔다

  그래도 세상은 나름 친절하였다

  갑자기 늙은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서로 닮은 이쪽인지 저쪽인지

  알 수 없는 기슭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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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망와의 귀면을 쓰고 오는 날들』에서/ 2021. 12. 31. <서정시학> 펴냄   

 이영란李姈蘭/ 전북 김제 출생, 2015년『서정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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