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치명/ 이영란(李姈蘭)

검지 정숙자 2022. 3. 4. 00:01

 

    치명

 

    이영란李姈蘭

 

 

  나도 본 적이 없는

  내 속을 보이기 위해

  굶는다

 

  그렇게 굶다가 몇억 년 굶고 있다는

  어떤 윈시동굴이 생각났다

  확인하지 못한 외부 같은 내부,

  무아無我를 뚫고 지나가는

  그 지경 끝에서 거꾸로 자라는 석순과 종유석,

  박쥐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독설 묻은 메아리 하나를 오려 삭혀

  조금씩 뜯어먹고 있다는 동굴에서

  가끔씩 한숨 같은 바람이 튀어나오지만

  그 바람 속엔 답답한 명치가 섞여 있다

  한 치도 안 되는 이 속을 외계外界인 양

  주먹손으로 두드리는 일이 잦지만

  환청 비슷한 공명들은 날아가지도 

  속 시원히 떨어지지도 않는다

  어떤 메아리도 가라앉히지 못하는

  누습한 동굴의 비말飛沫

  사면斜面 아래 함몰지엔

  정적靜寂이 말갛게 녹아있다

 

  내시경 끝에 잡혀 나온

  몇 마리의 박쥐를 보여주며 의사는

  아직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

  메아리를 조심하라고 했다

  굶어야 잘 보이는

  치명致命이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어느 정도 나이에 이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위나 대장 내시경 검사의 경험을 소재로 삼은 위의 시에서 "외부 같은 내부"인 내장 속의 모습이 이런저런 비유적 형상들을 매개로 어떤 풍경처럼 서술돼 있다. 이 시에서 우리 자신의 것이면서도 평소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위나 대장 같은 내장 속을 탐색하는 것은 내시경 카메라가 아니라 시적 응시의 카메라다. 그것이 보며주는 것은 내장 속의 물리적 형상을 비유적 언어로 번역한 결과로서 산출된 언어적 형상들이다. 그런데 「치명」에서 형성된 언어적 형상이 우리의 내장 속의 모습으로 단순히 환원되기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것이 시적 재료로 삼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서 그것 자체로부터 전환된 언어적 형상과 그것 사이의 잘 표현된 유사성만을 감탄하면서 확인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시의 형상 자체를 넘어 다른 것으로 나아간다. 시적 응시의 카메라가 포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시의 화면은 그 자체로써 화면 바깥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 화면의 영상이 그와 같은 것이 되게 한 그 무엇의 존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 무엇이란 바로 우리의 삶,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겪는 인간의 삶이다. (p. 시 60-61/ 론138-139) (강웅식/ 문학평론가)

 

   -----------------

  * 시집 『망와의 귀면을 쓰고 오는 날들』에서/ 2021. 12. 31. <서정시학> 펴냄   

  * 이영란李姈蘭/  전북 김제 출생, 2015년『서정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