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氏
김화연
솜氏의 유래를 따진다면
손끝, 입 끝의 재간쯤 되겠다
기울어진 그늘을 바로 세운다거나 정갈한 햇빛을 모으고 물방울 소리를 내는 빗방울을 뚝딱 고쳐 내는 사람의 성씨일 것이다 또 우리 엄마 열 손가락 쓴맛 단맛 짠맛 구수한 맛이 골고루 배어 나오던 그런 손맛의 이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솜씨 중에 솜씨는
사람을 잇는 솜씨가 으뜸이다
저 먼 곳에 사는 사람을 가까운 곳으로 오게 하는 일처럼 아득한 세월을 끌고 와 푸른 시력과 시큼한 입맛을 그대로 옮겨 오는 솜씨, 햇살과 찬 이슬과 바람을 조리해 편백나무의 과녁을 맞히는 솜씨
오랫동안 숨겨 놓은 이불 속 씨앗을 겨울 흙무덤에서 꺼내기도 한다
계절을 잃은 씨앗 하나 꺼내어
맛깔나게 푸른 싹이 돋게 만드는 손끝
지나간 날과 앞으로 다가온 날을
아무렇제 않게 이어 놓은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솜氏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에서 "솜氏의 유래"를 "손끝, 입 끝의 재간쯤"이라 말한다. '솜씨'는 손으로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하는 재주를 말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수단이나 수완을 의미하니 "손끝, 입 끝의 재간쯤"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이 시는 사람의 성씨인 "솜氏"를 그려 냄으로써 "기울어진 그늘을 바로 세운다거나 정갈한 햇빛을 모으고 물방울 소리를 내는 빗방울을 뚝딱 고쳐 내는 사람의 성씨"일 것이라 말한다. 또는 "쓴맛 단맛 짠맛 구수한 맛이 골고루 배어 나오던 그런 손맛의 이름"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솜씨 중에 솜씨", 으뜸인 솜씨는 바로 "사람을 잇는 솜씨"이다. "저 먼 곳에 사는 사람을 가까운 곳으로 오게 하는 일", "지나간 날과 앞으로 다가올 날을/ 아무렇지 않개 이어 놓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고 지나간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까지도 이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솜氏", 진짜 솜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p. 시 14-15/ 론142) (권경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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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단추들의 체온』에서/ 2022. 1. 28. <시작> 펴냄
* 김화연/ 전북 순창 출생, 2015년『시현실』로 등단, 시집『내일도 나하고 놀래』『소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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