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피/ 박완호

검지 정숙자 2022. 2. 28. 01:59

 

   

 

    박완호

 

 

  반송된 등기처럼 날 자꾸 찔러대는 순간이 있다 마지막 날의 아버지, 농약은

 

  왜 더 푸르러도 좋았을 사내의 나날을 한꺼번에 걷어가 버린 걸까 반송되지 않는 아버지, 산자락에 비스듬히 거꾸로 누운 그의 눈동자에 어린 하늘빛 따라 푸르렀다 붉었다 하는 저수지 물살들, 죽음과 삶이 수시로 뒤바뀌는

 

  농약 뿌린 논에서는 벼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벼 아닌 피였던 것,

 

  피는 또 피를 낳고, 그처럼 나도 피의 날들을 건너갈 것이다 결코 반송되지 않을

     -전문-

 

  해설> 한 문장: 한 사건을 수식하는 어휘들, '마지막 날', '농약', '거꾸로 누운' 등은 사건의 비극성을 수식간에 표면화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그 위력은 '반송된 등기'가 시인을 '찔러대는 순간'으로 갑자기 현재화한다. "그의 눈동자에 어린 하늘빛 따라 푸르렀다 붉었다 하는 저수지 물살들"에서 '어린'을 중의적으로 최초 목격자의 시선으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죽음과 삶이 뒤바뀌는" 그 절명의 순간이 '반송된 등기'를 받아드는 어처구니없는 순간에 곧바로 소환되는 까닭을 능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의 '피'는 3연의 "아버지는 벼 아닌 피였던 것" 벼 아닌 피였던 것"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표면적으로는 "볏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동음이의어로 중의성을 갖는다. 4연의 "피는 또 피를 낳고, 그처럼 나도 피의 날들을 건너갈 것이다" 라는 표현은 '피'를 통해 앞부분에서는 심층적으로 세대의 연속을 뒷부분에서는 '피'를 제유로 '피의 날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고통에 대한 시인의 원초적 입장을 드러낸다. (p. 시 61/ 론92-93) (백인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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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에서/ 2022. 2.20. <북인> 펴냄   

  * 박완호/ 1965년 충북 진천 출생, 1991년『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내 안의  흔들림』『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등, 6인 동시집『달에게 편지를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