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 틈새 읽기/『현대시』2008-2월호>
조선족의 노래
김윤배
우리를 동포라고 부르지 마라
우리는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에서 온
조선족일 뿐 중국동포라고 부르지 마라
살아생전 가리봉 시장 메케한 중국 거리
건두부와 컵술로 분노를 달랬었지만
오늘은 아내가 따르는 술 한 잔으로
내 흰 뼛가루 적시며
조국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말하지 않으마
청도보다는 칭따오가 연변보다는 옌볜이
아니아니 건두부보다는 간더우푸가
컵술보다는 커우베이주가 입술에 달았던
이승의 시절은 아름다웠다
내 조국 땅에 숨어 들어와 일하는
조선족, 노임 깎고 체불하고 구타했다고
말하지 않으마 밥이 치욕인 줄 알아버린 탓이다
밥은 공사판 위태로운 사다리에 있었고 밥은 나를
냉동실 연고자 없는 시체로 버려두었다
조국이 내게 베푼 마지막 은혜였다
나는 아내의 조사를 들으며 울었다
불법체류자의 아내이기 때문에
세 시간이면 올 수 있는 조국을
80일만에 와 내 백골 더듬으며
병원 냉동실에 누워 있었을 당신 생각하면
영혼이 얼어온다고 흐느끼는
아내의 조사를 들으며
커우베이주 꿀꺽 넘긴다
아내는 내 뼛가루 내 고향
흑룡강에 뿌려줄 것을 믿는다
-전문-
죽은 자의 절규
정숙자
내 눈물을 담보하지 않고도 매일 아침 태양이 돛을 올려주었을 때, 그때가 바로 인생의 봄날이었다. 그 봄날은 당신한테도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태양은 자비와 무자비를 동시에 내려 보내니 말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봄날을 위해 대신 울어주던 자가 있었다. 우리의 봄날을 위해 대신 피 흘리던 자가 있었다. 그 위대하고 가엾은 자를 일컬어 우리는 부모라 한다.
「조선족의 노래」는 ‘삶과꿈’에서 매해 펴내는 앤솔러지 『좋은시 2004』에서 읽고 간직해둔 시다. 금년에 부쳐온 『좋은시 2007』역시 현 편 한 편 어느 문예지에 발표 되었던 작품인지 ‘바를正’ 字까지 써가며 꼼꼼히 읽었다. 나름대로 <좋은시>를 싣는 잡지의 그래프를 그려볼 수 있기 때문.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그 한 권에서 단 한 편의 우수작을 고른다. 그러니까 그 해, 2004년의 좋은시 앤솔러지에선 「조선족의 노래」가 뽑혔던 것이다.
후훗! 이건 ‘숙자문학상’이랄까? 상패도 상금도 없지만 나는 그 일을 매우 뜻 깊게 여기며 되풀이한다. 그가 누구이든 전화를 걸어 좋은 시를 읽게 해준 데 대한 감사를 드린다. 그게 ‘숙자문학상’의 전부다. 참으로 ‘맑을淑’ 字에 부합하는 행사가 아닌가. 당시 김윤배 시인은 나에게 전혀 생소한 이름이었다. 오로지 「조선족의 노래」로 인해 궁금증이 촉발되었고, ‘삶과꿈’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여차지차 여읍여소(如泣如笑)의 전화를 끊었고, 만남의 기회를 갖거나 두 번째의 전화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전화의 톤이 여읍여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족의 노래」가 나 자신에게 빙의(憑依) 현상을 일으킨 까닭이었다. 조선족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비극적 민족사를 배경으로 한 우리의 겨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국에 돌아와 갖은 고초를 겪는 실정이다. 어쩌면 부모세대의 고통보다도 더 극심한 질곡에 처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모세대가 지녔던 대의명분이라기보다는 생존 자체가 차꼬로 채워졌으므로.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여러 차례 목메었다. 지금까지 타인의 시를 읽으며 울었던 기억은 李箱의 「烏瞰圖 詩弟一號」 정도이니 그 울림에 대해서는 덧말이 필요치 않으리라.
「조선족의 노래」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 이용악의 「낡은 집」에 뒤를 이음직한 우리 민족의 애화이다. 조국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측은지심의 발로이고 수오지심의 고백이며 시비지심의 공개인 이 시. 부모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이 시가 없었다면 우리 시단은 한겨레의 이름 앞에 참으로 공허로웠을 것이다. 28행으로 표현된 「조선족의 노래」는 역사성을 아울렀고 또 비극미를 점했다. 이 노래는 죽은 자의 절규이다. 죽은 자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시인의 붓을 빌어 울혈을 토해냈다. 여기 쏟아진 한마디 한마디는 개인의 심중에 맺힌 천둥일 뿐 아니라 전 조선족의 가슴에 흐르는 피눈물인 것이다.
부모나라에 와서 결국 주검으로 돌아가야 했던 노동자. 김윤배 시인은 「조선족의 노래」로 대한민국 아닌 소한민국(小韓民國)의 현장을 고발하였고, 우리의 양심을 가책케 했다. 언젠가 본격 연구자의 책상에 이 시가 올려지길 바란다. 그리고 동족에 대한 예우가 범국가적 차원에서 하루 속히 이루어져 자녀세대의 봄날만큼은 부디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끝으로 수많은 우리 동포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고 또 빈다.
*김윤배/ 충북 청주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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