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예후(豫後)/ 박수현

검지 정숙자 2022. 2. 21. 18:39

 

    예후豫後

 

    박수현

 

 

  두 발을 부려두고 왔지요 칼과 가위의 고요도 놓고 왔습니다 눈과 얼음의 흰 바다를 유영하던 기억을 접어둔 채, 꼭 스무 날의 불면도 생각지 않기로 했지요 늘 북쪽으로부터 눈보라가 쳤습니다 내 몸의 기상도氣象圖 곳곳을 침략하며 발호하는 한랭전선 그랬어요 통증은 겨울자객처럼 다가와 내게 짐승의 자세를 취해보라고 집요하게 속삭였지요 나는 서랍 속 미제사건의 파일처럼 점점 어둠에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손길이 내 전신인 흉터의 어둠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니들 홀더가 꿰맨 수술 자국에서 밤마다 물결치는 소리가 수도꼭지의 누수漏水처럼 새나왔습니다 갯지렁이들도 농게 새끼도 슬개골을 따라 기어다닙니다 까마득히 몰려오는 파도가 휠체어에 앉은 내 어둠을 내습來襲하네요 나는 하얀 소용돌이 속에 처박히며 비명을 지릅니다 그리고 그저 폐선처럼 표류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침이 오면 내 전신의 어둠은 어느 해안에서 좌초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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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소금』 2021-겨울(40)호 <신작시>에서

  * 박수현/ 2003년『시안』으로 등단, 시집『운문호 붕어찜』『복사뼈를 만지다』『샌드페인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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