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낮은 굴뚝/ 박분필

검지 정숙자 2022. 2. 21. 18:21

 

    낮은 굴뚝

 

    박분필

 

 

  내가 본 그 들판은 시베리아입니다

 

  언제 내려앉을지 모르는 판잣집에서

  굴뚝도 아궁이도 없는 식수마저 얼어 터진 곳에서

  노부부가 이민자처럼 언어를 소통할 이웃도 없이

 

  절뚝거리며 골목을 뒤져 폐지를 줍습니다

  폐지 판, 돈으로 사온

  홍시 두 개로 하루치 식사를 겨우 때웁니다

  그것마저도 감사해서 맛있다, 맛있다

  아내의 웃는 입과 눈을 바라보는 거무죽죽한 그 얼굴에

  여러 종류의 굴뚝이 다 보입니다

 

  어느 사대부의 고택에서 본 담장보다 낮은 굴뚝이

  끼니 거른 민초들에게 밥 짓는

  연기냄새를 부끄러워한

  사대부들의 마음씀씀이였다, 로 기록된

  감정 없는 그 굴뚝도 보입니다

 

  그들이 과연 이 시베리아 벌판을 알기나 할까요

  시베이라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항상 살을

  깎아대는 지독스런 바람이어서

  눈물마저도 고드름으로 매달린다는 것을

 

  시베이라에 또 바글바글 눈이 내려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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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소금』 2021-겨울(40)호 <시인 조명 ①>에서

   * 박분필/ 1996년『시와시학』으로 문단 활동 시작, 시집『바다의 골목』외 다수, 동화집『하얀 날개의 전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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