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프랙털/ 김유태

검지 정숙자 2022. 2. 20. 02:38

 

    프랙털

 

    김유태

 

 

  1

 

  물의 배를 기어이 갈랐다. 오래전 죽은 강의 축적된 얼굴들은 뜬눈으로 잠들 듯 혼곤하다. 가른 배에서 쏟아지는 표정들. 나와 그대가 봉합하지 못한 채 삼켜둔 내장의 눈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고화질로 쏟아진다. 병든 두 손으로 감싸도 손가락뼈 사이로 빠져나가는 생애와 그 안에서 흐르지 못하는 생 전체의 불협.

 

  한 번도 빛을 본 적 없던 추상의 얼굴이 이제 빛 아래에서 익사한 채로 굳어간다. 내가 순례하는 슬픈 얼굴은 언제나 유지流地였다. 찢긴 옷 같은 가죽에 수감된 듯 찬 피가 담겨 있어 닫으려 해도 닫히지 않고 딛으려 해도 딛을 수 없는 곳이었다. 불을 지켜 움직이는 것을 살피면 암시적인 왕국에 잠든 표정 없는 생들.

 

 

  2

 

  물도 나를 기어이 갈랐다. 강은 나의 지하로 내려가 홀로 타협도 없이 생을 그을린다. 나는 물의 검은 표정이 되고 물은 내 안에서 나를 익사시킬 듯이 흘러든다. 영원히 가지 못할 소실점을 그리는 화가의 눈으로 나는 물의 숨을 가만하게 쳐다본다. 나의 내부에서 뜬눈으로 웃으며 또다른 기억을 안에서 품는, 저 흐르는.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고 들리던 것이 들리지 않는 불내성의 질서. 그렇다. 흐르는 강의 내장이 모두 나였다는 것. 흐르지 못하고 쏟아지지 못한 채 간신히 매달려 있다는 것.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병든 아기처럼 안고 거꾸로 자라는 나무에 물을 준다. 강도 나도 웅크린 채 서로를 기른다. 태어나기 전에 다 자라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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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징학 연구소』 2022-봄(5)호 <김유태/ 근작시> 에서  

  * 김유태/ 1984년 서울 출생, 2018년『현대시』로 등단, 시집『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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