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우로보로스의 환(幻)/ 주경림

검지 정숙자 2022. 2. 17. 14:09

 

    우로보로스의 환

 

    주경림

 

 

  뱀은 한 해에도 여러 차례 허물을 벗는다

  나무껍질이나 거친 바위에 머리와 몸을 비벼

  입술부터 벗는다

 

  그런데 비단뱀 한 마리가

  자신이 벗어놓은 허물 속에서 빙빙 돈다

  길을 잃었나

 

  망사스타킹 허물이 움찔움찔 살아 움직인다

  고무줄 꿸 때, 바지허리춤을 폈다 오무렸다 하던 모습이다

  '꼬리를 삼키는 자', 우로보로스의 신화 그대로이다

 

  서너 시간 헤매다가 드디어 고개를 밖으로 내민다

  아, 살았다!

  쑥쑥 허물을 벗으며 나무를 타고 오른다

 

  동그랗게 출구를 다시 봉한 그물망사 스타킹,

  후줄근해진 그 안에서

  내가 지칠 줄 모르고 온몸으로 빙빙돈다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려 그 해의 허물을 벗지 못하면

  뱀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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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소금』 2022-봄(41)호 <신작시 ②>에서

   * 주경림/ 199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풀꽃우주』『뻐꾸기창』외 2권, 시선집『무너짐 혹은 어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