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통증
이화은
그들의 시선이 내 눈동자를 꿰뚫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간단히 뒤통수를 통과한 시선이
뒷사람의 눈동자에
뒷, 뒷사람의 이마에 가슴에 허벅지에 닿기 위해 그들은
내 이마와 가슴과 허벅지를 몇 번인가 꿰뚫었다
나는 유령인가
내 몸이 이렇게 잘 뚫리다니
숭숭 뚫린 구멍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
힘껏 차를 마셨다
그들의 시선은 섬광처럼 화려하고 예리하였지만 다행히
내 머리카락은 한 올도 다치지 않았다
백 년 된 무덤 속에서도 썩지 않던
삼단 같은 머리칼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좌담회는 성공적이었다고
일제히 큰 박수를 쳤지만
나를 비롯한 몇 유령급의 손바닥에선
목 쉰 바람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간신히 빠져나갔다
다행히 뚫린 구멍의 통증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언급되지 않았다
눈치가 깨알 같은 통증이 귀신처럼 몸을 숨겼으므로,
유령을 품고 사람으로 귀화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 『시인플러스』2012-봄호
* 이화은/ 1991년『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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