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요한 통증/ 이화은

검지 정숙자 2012. 6. 1. 14:54

 

 

    고요한 통증

 

     이화은

 

 

  그들의 시선이 내 눈동자를 꿰뚫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간단히 뒤통수를 통과한 시선이

  뒷사람의 눈동자에

  뒷, 뒷사람의 이마에 가슴에 허벅지에 닿기 위해 그들은

  내 이마와 가슴과 허벅지를 몇 번인가 꿰뚫었다

  나는 유령인가

  내 몸이 이렇게 잘 뚫리다니

  숭숭 뚫린 구멍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

  힘껏 차를 마셨다

  그들의 시선은 섬광처럼 화려하고 예리하였지만 다행히

  내 머리카락은 한 올도 다치지 않았다

  백 년 된 무덤 속에서도 썩지 않던

  삼단 같은 머리칼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좌담회는 성공적이었다고

  일제히 큰 박수를 쳤지만

  나를 비롯한 몇 유령급의 손바닥에선

  목 쉰 바람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간신히 빠져나갔다

  다행히 뚫린 구멍의 통증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언급되지 않았다

  눈치가 깨알 같은 통증이 귀신처럼 몸을 숨겼으므로,

  유령을 품고 사람으로 귀화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 시인플러스』2012-봄호

  *  이화은/ 1991년『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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