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기별하다
김연종
벼룩시장의 정보를 취합하여
네 징후를 포착한다
몸속의 소식들은
언제나 한발 늦기 마련이다
진검승부를 펼치기도 전에
몸을 꺾어버리는 너의 비겁함을
술잔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단기기억은 해마가 관장하고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이 저장한다지만
술 취한 너에 관한 기억이라면
씁쓸한 입술과 어리석은 간뿐이다
인생에서 승부란 늘 뻔한 이치다
목소리 센 놈이 일견 유리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취하게 하는 자가
해마 속에 파고들고
누군가의 마음을 섞는 자만이
대뇌피질에 자리 잡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도
누구와도 마음 섞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헛구역질만 해대는
멍청한 간이여,
내 술이나 한 잔 받아라
-전문-
▶ 시 속의 의학 이야기 23(발췌)_ 김연종/ 시인· 김연종 내과의원 원장
간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우리가 마신 술은 장에서 흡수되어 간을 거쳐 대사되는데,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대사물질이 바로 간 손상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술은 알코올 성분이 1% 이상 들어있는 모든 음료를 말한다. 술의 역사는 인류에 대한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적으로 널리 허용되는 중복성 약물은 알코올, 카페인, 담배인데 이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 역시 알코올이다. 원시시대에 나무에서 과일이 떨어져 발효된 것을 원숭이가 마시고, 그 후 인간들도 같이 마시며 자연스럽게 술의 기원이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최고의 음식 중 하나로 여겨지다가 마침내 인간의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리라.
탈무드에 나오는 술의 기원은 사뭇 교훈적이다.
이 세상에서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찾아와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인간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놀라운 식물을 심고 있지. 이 식물에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데, 익은 다음 그 즙을 내어 마시면 아주 행복해진다." 그러자 악마는 동업자를 자청하고 양과 사자, 원숭이, 돼지를 끌고 왔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죽여 그 피를 거름으로 썼다. 포도주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술은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좀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를 한다. 그리고 더 많이 마시게 되면 토하고 뒹구느라 돼지처럼 더럽게 된다. 이것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었다. 악마가 인간을 찾아가기가 너무 바쁠 때는 대신 술을 보낸다.
그렇다고 술이 꼭 악마의 편에 서 있는 것만은 아니다. 술은 우울감과 긴장감을 단번에 해소시켜 준다. 서먹한 인간관계도 한순간에 풀리게 한다. 평소에는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존재이다.
그리스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는 "한 잔의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해 준다."라고 했으며 히포크라테스는 "술은 음료로서 가장 가치 있고, 약으로써 가장 맛이 있으며, 음식 중에서 가장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며 술의 순기능을 예찬했다. 하지만 술은 광기와 중독을 불러온다. '랭보의 연인'으로 유명한 베를렌을 어둠의 끝까지 몰고 간 것은 당시 유행했던 압생트였다. 알코올 도수가 70~80도에 이르는 압생트는 19세기 후반 유렵, 특히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열광하던 술이었다. 베를렌, 랭보를 비롯한 시인들과 고흐,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 피카소, 헤밍웨이 등도 이 술의 영역에 빠져들었다. 압생트가 예술가들에게 많았던 것은 환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술은 결국 인생을 파국으로 안내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처럼 달콤함이 나락을 불러온다. 애주가와 주정뱅이는 인생 한끗 차이다. 그 출발은 같지만 끝은 심히 다르다. (p. 시 382-383/ 론 383-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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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문학청춘』 2021-봄(47)호 <시 속의 의학이야기 23> 에서
* 김종연/ 1962년 전남 광주 출생, 2004년『문학과경계』로 등단, 시집『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극락강역』등, 수필집『닥터 K를 위한 변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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