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_이근배(李根培) 시인께/ 한정원

검지 정숙자 2021. 6. 7. 02:00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 이근배李根培 시인께

 

    한정원

 

 

  시의 첫 줄은 신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폴 발레리보다 먼저 짚어주셨지요

  신춘新春을 피워 올린 당신의 노래들은

  육십 년이 지난 지금 산하에서 들려오고

  교실에서도 퍼져갑니다

 

  겨울 자연이 한 장 한 장 지워지고

  타관의 햇살을 낭독하던 봄,

  가슴에 꽃을 달고 싶어

  울고 싶은 새의 목청을 가지려고

  오랜 잠에서 깨어났지만

  제 목소리밖에 들을 줄 모르는 청맹과니,

  저는 한 자루의 총도 꺼내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주술만 외웁니다

  모국어에 게딱지만 달라붙게 해놓고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돌아서 가야할 환유의 거리에서

  직선으로만 달려갑니다

 

  아직도 예술원 입구에 서서 더듬거리는

  빨간 피터의 고백이 들리시나요

 

  천지에 발을 담그고 두 팔을 올리시던 그날

  백두대간은 당신 가슴에 들어가면

  튼튼한 시의 집을 짓고 햇살 아애서 눈부셨지요

  청령포도 한강도 금강산도 한라산도

  활판 속에서 다시 꿈틀 일어납니다

  킨케이트의 젖은 머리칼, 우수의 쓸개도

  당신이 부르는 시조 속에서는

  거뜬히 한 세상 건져 올리는

  사나이가 되었지요

 

  큰 절 한 번 올리지 못하고

  달팽이처럼 숨어 사는 저를 용서해주신다면

  천벌로 받겠습니다

  왜목마을 해변에서 시비를 붙잡고

  용서를 천벌이라고 낭송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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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사람』 2021-여름(100)호 <100호 기념특집/ 시인이 시인에게>에서

   * 한정원

/ 199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마마 아프리카』『그의 눈빛이 궁금하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