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빛이 타고 있다_김현서 시인에게/ 함기석

검지 정숙자 2021. 6. 7. 02:15

 

    빛이 타고 있다

    -김현서 시인에게

 

    함기석

 

 

  멈춰진 뻐꾸기시계에서 죽은 건전지 한 쌍 꺼내

  창가에 세워놓았다

 

  노부부 같다

  빛 속에서 치르는 직립의 장례미사

 

  번개를 품었던 저 늙은 몸에 남은 어둠과 고요

  빛보다 밝고 번개보다 세차다

 

  시간을 돌리고

  우리를 돌리고  세계를 돌리느라

 

  일생을 한 자리에서 전력을 다해 쓴 필생의 시

  그 침묵의 책 읽다가, 문득

 

  시계 옆 올해의 마지막 달력

  흰 종이배로 접어 하늘 강물에 띄워 보내니

 

  오랜 시간의 급류 타고

  오랜 세월의 협곡 돌고 돌아 천국항에 닿을 때

 

  죽음이 삽으로 단 한 개의 구덩이를 판다면

  그것은 나의 것

 

  그것이 만약 그대 주검의 외로운 침실이라면

  나는 영원히 멈춰진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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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사람』 2021-여름(100)호 <100호 기념특집/ 시인이 시인에게>에서

   * 함기석/ 1992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디자인하우스 센텐스』『착란의 돌』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