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재활용품/ 정겸

검지 정숙자 2021. 6. 1. 19:08

 

    재활용품

 

    정겸

 

 

  중년을 훌쩍 넘긴 사내가 색 바랜 이력서를 들고

  재활용품통 옆에서 무엇인가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 버리고 간 깨진 화분

  화분에 그려진 진경산수화 문양만이

  한때 그의 삶이 고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람막이 없는 훼손된 화분 속에서

  동양란 한 촉 흔들리고 있다

  버릴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

  미련 없이 돌아선다

 

  발걸음은 그 자리에 굳어 있고

  왠지 혼란스럽고 뒷머리 켕긴다

  언젠가 나 역시 저렇게 버려질 것이다

 

  다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는 순간

  바람에 떨고 있는 한 촉의 난

  푸른 꽃대 올리며 버티고 있다

  수잉기에 들어선 줄기 통톻하다

  손바닥 위에 살짝 올려 자세히 살펴본다

 

  아뿔사, 귀하디 귀한 제주산 한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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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현실』 2021-봄(83)호 <신작시>에서

   * 정겸/ 2003년『시사사』로 등단, 시집『궁평항』외 2권